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OOT May 17. 2023

안쓰럽게도 성실한 사람

제주도 한 달 살기 D+21 / 동생으로부터의 급작스러운 연락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인이 추천해 준 회사에 면접을 가지 않기로 정했다고. 회사 측에는 연락을 했고 내 남자친구에게도 전화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면접을 가지 않는 이유로는 아무래도 설계 쪽이 여전히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 너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미 회사에도 연락을 했고 바뀌는 건 없지. 거기까지만 말하면 될 거 '이 생퀴야 다른 데 잡힌 거 없으면 면접이라도 보고 오지 그랬어! '라고 말을 해본다. 


동생은 추천해 주었는데, 오래 다니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그러면 자기 자신이 더 싫어질 것 같다고 한다.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냥 바보인 것 같다고 한다. 더욱이 올해로 아버지는 칠순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백수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음이 불편하고 엄마는 아프고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착한 내 동생. 이 누나는 이렇게 제주한달살이를 왔는데, 나도 돌아가면 백수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그런 못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긴 백수기간이 동생의 마음의 병을 만든 것은 아닌가 걱정이 살며시 된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취업을 하게 되면 취업 후에도 사회생활에서도 좋지 못하다. 동생이 걱정된다. 동생의 30번째 생일이 오고 있다.

동생의 30세 생일도 조금은 서글플 것 같다. 왜냐하면 30세의 생일에는 멋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20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볼품없던 30세여서 춧불을 끄면서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멋진 치위생연구원이 될 거야, 보건 공무원이 되어야지,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어야지. 하나씩 무너질 때마다, 나도 무너졌다.


그 어떤 날에는 스스로 숨 쉬고 먹고, 싸기만 하는 단세포 동물인 건가 자책했다. 고등생물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는 것이 단세포적이라며 무능함에 절망하여 한 끼를 안 먹은 적이 있었다. 내 동생도 그런 마음이 들까. 많이 야위어 간다. 눈물이 난다. 내 마음인지,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내 동생은 나와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동생은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마중도 와주고, 요리도 줄곳 해주는 착한 동생이다. 4명의 형제자매 중 남자아이로 태어나 할머니한테서 나보고 용돈을 더 받을 때면 나는 뿌루퉁해 있었다. 동생은 그 용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 그런 착한 동생은 이제는  그냥 돈을 벌고 싶다고 한다. 동생은 성실했다. 그래 우리 집안사람들은 하나 같이 성실하다. 정말 성실하다. 차라리 약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성실하다고 최선의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안쓰럽게도 성실하다.


자랄 때는 그렇게 아웅 다웅하면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학교가 아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형제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우리 모두 형제자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동생의 전화를 아침 10시쯤에 받아서일까. 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고 또 쉴 때 전화를 해본다. 동생이 통화 중에 운다. 그러다가 전화를 끊자고 한다. 엄마가 방금 집에 왔다고 한다. 우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은 동생은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한다. 27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에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 동생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였고 아버지는 70세다. 어머니는 아빠보다도 어린데, 아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이제는 할머니 같은 분위기가 난다. 


제주도로 오기 전에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계속해서 다음에 먹겠다는 한약을 오기 전에 급하게 주문했다. 부쩍 여기 관광지에 와서 잘 노는 어르신들을 보면 부럽다. 차라리 잘 노는 엄마였으며 좋았을 테테 어릴 적 엄마가 옆집 친구와 비교하면 나는 되바라지게 옆집엄마와 엄마를 비교했다. 지금도 나는 그런 것 같다. 누구네 엄마는 알아서 잘만 놀러 가던데, 누구네 엄마는 딸내미 일자리 주선해 주던데,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럴 시간이란 게 있을까. 이 관광지를 도는 것도 나는 힘든데, 우리 엄마는 이제 더 힘들겠지. 다음에는 엄마와 와야지.


금전적 여유가 될 때면, 생각보다 먼 미래일 수도 있지. 엄마는 늘 연차를 혹시 모르니깐 하면서 쓰지 않는다. 직장인이 그렇지만, 엄마가 연차를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다음은 이제  회사를 나오는 때다.


돈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족들도 함께 어울리는 것도, 가족구성원도 함께 시간이  나야 가능하다. 돈에 대한 필요성은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은 이 갈급함이 더한 날이 오겠지. 그러면 그때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내 생애 최고의 순간에 온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전 12화 제주 백수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