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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May 16. 2023

제주 백수입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D+20 / 오늘은 동네 백수로 하루

종아리가 땅긴다. 정확히는 발목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근육이 땅긴다. 종아리 한가운데가 퉁퉁하니 부은 것처럼 근육통이 몰려온다. 이럴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떠는 종아리 근육을 느끼면서 아, 걷기도 평소 걷던 사람들이나 하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있었다. 이제는 제주 한 달 살기 20일 차.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아주 천천히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을 돌리고, 커피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역시, 체인점 음식은 이제 제주도에서 엄마의 맛?처럼 익숙한 것이 좋다. 서울 있을 때의 모습이 슬슬 나온다.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하고, 10시쯤 그래 오늘 하루는 돌문화공원하나만 뽀개자. 하고 경로를 검색해 보니 이런 오늘은 휴무다. 어제 친구가 나라에서 하는 기관은 월요일에 쉴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 확인하지 않았으면 오늘 하루 크게 공쳤을 뻔했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했던 곳을 못 가게 되니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 검색을 하며, 그냥 쉴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상하다. 10시가 살짝 넘었을 뿐인데 방안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다. 그리고 후드 안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린다. 번개가 먼저 치더니, 빗방울이 몇 번 떨궈지는 소리를 인지할 할 때쯤  훅 소나기가 온다.


헉, 근데 기쁘다 뭔가 내 안에 멋진 핑계거리가 생겼다. 이런 날에 동네 카페나 가보자 하고 근처에 알아 본 카페로 향했다. 아무래도 매일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거나, 커피 자체는 관광지 근처로 가서 먹는 편이다. 숙소 근처 근처에 있는 카페는 굳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큰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을 보며 그 가게를 보니 꽤나 크고 멋있다. 도보 4분으로 검색되는 이곳이라면 비가 와도 갈만하지 하고 발걸음을 뛴다.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니 종아리의 불편감이 한층 더 와닿는다. 그리고 내 운동화는 숨쉬기 편한 운동화라 그런지 그 5분 사이에도 양발이 젖었다. 이런, 역시 비 오는 날에 이동하기는 부적합한 것 같다.


5분이지만 운동화가 젖는 역경을 딛고 온 카페는 개방을 했지만 습습하지 않았다. 빵이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공간이 아주 광활하고 그 자리 배치도 여러 가지로 인테리어 되어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다.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서 양쪽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한 군데는 주문접수대와 빵이 진열되어 있다. 그 공간에도 좌석이 있고 쾌활한 분위기가 되어 있다.


내가 머문 공간은 반대쪽에 있는 공간으로 아이들과 함께 않을 수 있는 좌식 같은 공간, 그리고 개인 독서실처럼 앞가림이 있는 개인 석, 창가에 자연채광과 바람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 석, 벽을 따라 있는 소파배치 등 여러 좌석 형태가 구성되어 있다. 


역시나 나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구름라테를 주문했다. 파란색 우유가 특징이다. 아침에 치킨을 먹고 나와서 디저트로는 호두뭉치(?) 같은 것을 주문했다. 제주도 한달살이 중 밥을 포기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그곳의 디저트도 주문하는 것이다.


커피의 풍미가 맛깔나지는 않지만, 무난했다. 책을 펼쳤다. 제주도에 와서 처음으로 카페에서 책을 펼쳐보았다. 먼 관광지까지 두꺼운 책을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온 책이 재미없다. 카피라이팅 관련 도서인데, 워낙에 유명한 도서라 호기롭게 구입했지만, 왜 유명한 도서인지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오기로 완독을 했다. 


그나마도 여기 카페 와서 완독이라는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남은 기간에 책이 없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에 앱을 켜서 여행지에서 읽을 만한 가벼운 도서를 구입하려고 보니 오늘이 화요일인데, 금요일에서야 도착할 수 있다고 하니. 고민을 하다 포기를 한다. 그래, 심심하면 밀리의 서재를 다시 구독하지 하며 덮는다.


그 공간에는 나를 제외하고 2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 시간인 만큼 조용히 무언가를 작업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울 우리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면, 자주 올 것 같은 공간이다. 남은 9일 동안 나의 제주동네 카페로 인정한다. 브런치도 팔고 있어서, 비가 오는 날 어제처럼 요리할 기력이 없는 날이면 이곳이 찾아가야겠다라고 내심 점찍어 놓는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 배민으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 5분이면 이런 멋진 공간에서 멍도 때리고, 생각도 해보고 단짠단짠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집에 가서 비도 오는 데 비상식량으로 남겨둔 새우탕라면에 김치를 올려 먹을 생각이다.  소소한 행복이다 하며 집에 가서 신이 나게 먹으면서 영화를 본다. 그리고는 소파에 반쯤 누워 인스타그램을 정리한다. 참 요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업로드하는데 인스타그램 인플러언서들은 대단한 것 같다. 요즘 이리 열심히 업로드를 하는데도 늘어난 팔로워는 5명이나 되려나. 애늙이는 처럼 자연경관을 올려서 그런가  다음부터는 사진 보정을 좀 해볼까? 생각이 든다.ㄹ

그리고는 블로그 정리를 좀 한다.  요즘 블로그를 통 못한다. 지금 블로그는 후순위다.


종아리가 여전히 불편하다. 불현듯 아 휴족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은 제주 동네 백수 콘셉트이네. 올리브영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지도에 검색을 해본다.


마침 올리브영 한라대지점 옆에 저장해 둔 곳이 있다. 독립서점이다. 여기 와서 만족스러운 서점 투어를 못했는데, 이곳은 내심 너무 정적이고 리뷰가 별로 없어서 좀 마음의 허들이 좀 높다. 그런데, 오늘 도서 구입을 포기한 것도 있고 그러니 이곳에 가서 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길 바라면서 30분 거리의 올리브영을 버스를 타고 간다.  여전히 종아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늘은 절대 적게 걸을 것이다. 그리고 올리브영에 가서는 역시나 괜스레 나는 피부에 신경 쓰는 사람, 팩하나를 더 사 온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


이게 바로 브랜딩인가? 종아리 근육통이 문제면, 휴족이 아니라 약국에서 파스를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약국은 열어 있을 시간이고 이 고통은 휴족으로는 부족한데, 왜 나는 파스라는 것이 바로 생각나지 않고 휴족을 생각했을 까.  그 특유의 향 때문인 걸까. 참. 나는 올리브영의 충성 고객인 게 분명하다.


그리고 도착한 공항서점! 두근두근 너무 조용하면 어찌하나. 정갈해서 참 좋은데, 뭔가 너무 조용한 매장은 나 혼자 있기 민망하잖아! 라며 소리치면 일단 인증샷을 찍고 들어가려는 엉? 문이 잘 안 열린다. 그래 보통 문은 당시기오지 하고 밀었던 문을 다시 당겨 본다. 책방지기님이 문이 좀 무겁다고 해주신다. 오홍 그런데 딱, 들어왔을 때 노래! 가 적당히 경쾌하니 아주 좋다.


나는 독서를 할 때도 매번 듣는 유뷰트가 있는데

https://youtu.be/sDDHIu6 nwUs

뭔가 이런 느낌이랄까. 적당한 정갈함에 공항서점만의 문구가 특색이 있어 보인다. 이런 서점이 좋다. 본인 상점만의 문구를 파는 곳. 쭉 들어다 봤다. 몇 개 안 되는 책 목록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책이 있길 바라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여행지에 가면 그곳 독립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오는 편인데, 그 책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할 때도 있지만 마지못해 이 여행을 기록하는 나만의 책장 꽂이를 채우기 위해 구매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딱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 '일기를 쓰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일기를 매일 쓰고 있던 나로서는 이런 사사로운 기록이 너무 좋다. 요즘은 유튜브로 일반인도 브이로그로 일상을 공유하며 지낸다. 이연 유뷰트 같은 경우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 유튜브도 좋긴 하지만, 글쎄 나는 브이로그를 구독해서 보는 유튜브는 없다. 개인의 일상적이고 내밀한 것은 일기만 한 것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 일기 써요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기는 내밀한 것이다. 물론 독자에게 글이 도착할 때쯤에는 어느정도 가공은 되겠지만  일기는 보는 대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내밀하다. 그래서 타인의 일기를 읽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일기 앞에서는 나쁜 사람이어도 된다. 그런데, 이 일기는 유쾌하다. 목차만 봐도 유쾌하기 짝이 없는데, 공황경험도 있는 분인데, 이런 글이..! 참, 세상은 예민한 사람들의 감각으로 표현된 것을 즐기면서도 그들을 포용하기에는 각박한 세상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에 비하면 내가 썼던 지난 주간 일기는 데스노트 같다. 이분의 일기를 읽고 난 후 유쾌한데, 나의 책을 읽는 독자는 유쾌할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 일기를 억지로 각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독히도 내 마음과 타인을 저울질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니깐. 그렇게라도 일기장에 나의 불안과 초초를 토해놔야지 내가 버틸 수 있었으니깐. 다른 책들을 쓱 보았지만 나는 이 책에 한눈에 반했고, 지금 당장 읽고 싶다 마음이 생겼다. 머릿속에 스타벅스에 가서 애정하는 제주 한정음료  제주발차애플망고블랜디드를 먹으며 소파에 누워서 읽을 생각 하니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찼다.


여기서 소소하게 굿즈를 사고 싶다. 집에 와서 보니 엽서 세트인 줄 알고 구입했던 것은 알고 보니 편지세트였지만 스스로 당황했지만 너무 신나서 소비 욕구가 왔나 보다. 이런 편지를 써야 하나?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패키지 안에 제주도 예매권과 방문 티켓을 넣어둔다. 다시 만족스럽게 본다. 이거 제주 편집물 스크랩물 봉투가 되었군. 제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제주 한 달 살이를 왔다는 말에 책방지기님은 한 달까지가 좋다고 하신다.   나는 아주 눌러앉고 살고 싶다. 그런데, 생각을 찬찬히 해보니 내가 제주도 와서 좋은 것은  제주도여서 뿐만 아니라,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데를 자유롭게  오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은  디지털 작업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빠르게 구입을 완료하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왔다. 행복하다. 6시가 안되서 나온 서점에서

 버스가 바로 왔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한마디가 나온다. 행복하다.


오늘은 특별히 관광지를 간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사 먹은 것도 아니다. 그저 동네 대형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올리브영에 가서 가볍게 쇼핑을 한 뒤, 서점에 가서 특색 있는 독립출판물을 고른 뒤, 좋아하는 음료를 테이블 위에 두고 늘어지게 소파에 앉아서 편한 데로 몸을 바꾸면서 읽는다. 하루가 꽉 찬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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