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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May 22. 2023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비효율적으로

제주 한 달 살기 D+27/ 제주도 버스는  멍 때리기가 참 좋다.

아침에 어제 사온 홍자밀크잼을 발라 먹고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한 후, 2시간 동안 소일거리를 한다. 벌써 점심시간이 오니, 식사를 한다. 이제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없애야 하는 상황이다잘 소분해 두었던 육개장과 밥을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스팸에 계란을 입혀서 김과 함께 먹는다. 내일은 남은 김치로 김치볶음밥을 해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다 먹으면 이제는 배달음식을 먹으면서 최대한 버리고 갈 것을 줄인다. 거창하게 매일 요리를 할 것처럼 식용유와 각종 소스를 가져왔지만 80% 이상 남아버렸다. 그래도 설거지는 부지런히 해서 그런지 다행히 일회용 40매 수세미를 가저온 것은 다 소진할 것 같다.


이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잘 가지고 갈까 그런 고민을 한다. 그래 밥 한 끼 뚝딱했으니, 살짝궁 나가볼까 하고 보니 비가 아슬하게 내린다. 제주는 생각보다 참 비가 자주 온다. 만장굴은 힘이 드니, 오름이나 오르자고 했던 나의 마음은 사라졌다. 비 오는 날에 오름을 오르는 것은 꽤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못 가본 카페나 가서 책이나 읽자는 생각으로 저번에 산 에세이집을 들고 나선다. 산책 겸 가는 카페라곤 하지만 1시간이나 걸려서 가본다. 작은 가방에 어쩔 수 없이 책과 비에 젖은 우산을 함께 넣곤 이동을 한다. 나는 버스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서 바람을 맞는 것을 참 좋아한다. 왜 오픈카를 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좁게 열린 창문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내 얼굴에 부딪친다.


나는 그 촉감이 좋다. 그렇다. 바람의 촉감이 참 좋다. 숨을 깊게 쉬지 않아도, 깊게 쉰 것 마냥 가슴이 틔인다. 눈물이  때는 눈이 시려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알 겨를도 없이 눈물이 나면 바람으로 떨궈준다.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 것이 잡생각은 날려준다. 버스 안에서 바람을 쐐는 것은 이불 안에서 에어컨을 쐐는 것 마냥 몸은 따뜻하지만 얼굴을 시원한 이상한 묘미가 있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버스의 주행방향을 고려하여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제주도에서의 1시간 버스이동은 생각처럼 길지 않다. 외지인인 것을 티 내듯이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안전띠를 맨다. 찐자 동네사람이라면 인사도 안전띠를 안 하고 버스를 타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서울 버스를 안 탄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안전띠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하철로만 출퇴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서울 버스에 대한 현 상황이 나에게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다.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늘 창밖을 본다. 멀미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는 자리를 잡으면  그래도 핸드폰,  등을   있는  이상하게도 버스는 그런 것을 전혀 하지 못하겠다버스 안에서 나는 핸드폰을 조금만 오래 보면 두통이 왔다. 책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친구의 바람처럼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이상하게 좋다. 오늘 버스 안 통로 건너 좌석에 앉은 분은 남편과 함께 올라와 좌석을 자리 잡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갈 것이니 다른데 앉으라고 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정도는 버티지 못하는 나는 버스 안에서는 주로 멍을 때린다. 만약 출퇴근 시간의 일상이라면 어떻게든 그 시간을 이용하려고 했겠지만,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 아니기에 제주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저번 오빠와의 드라이브에서 나름   빛을 발휘하였다. 어디쯤에 어디가 있다는 것으로  여기서 길이 3갈래로 나뉠 텐데와 같은 말을 해서 뿌듯했다. 뭔가 제주도가 내 손바닥에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12시부터 2시 방향으로 쭉 크지막하게  지역을 읊는다. 제주공항, 함덕, 김녕, 세화, 월정리, 성산, 섭지코지, 표선항 서귀포, 중문, 사계해안, 애월... 여행을 자주 안 가서 여전히 지방의 위치를 헷갈려 하는 내가 제주도는 이 정도면 이제 나름 흡족할 정도로 알아간다.


버스에 내려선 간 곳은  생각했던 분위기와 달리 힙하고, 바다뷰가 없었지만 열심히 가져온 도서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몰입이 조금 힘들었지만, 다시 몰입이 되었다. 참 재미있는 분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intj인 내가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써온 일기들은 거의  반성문이나 다음은 어떻게 처신해야지와 같은 글들이다. 그리고 어떤 의지와 투지의 표현이랄까. 책이 재미있어서 저자분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들어가 보았는데 다꾸채널로 취향이 아니어서 구독을 포기했다. 어쩜 프롤로그까지 완벽하신지.


책을 덮고, 엄마에게 연락해 어제 병원 가신다고 한 것은 어떻게 되었는지 안부를 물어보고 블로그를 조금 보다가 지도를 보니 곧 20분 내외로 버스가 온다. 사진 몇 가지를 찍고 화장실을 물어보았다. 1시간이 살짝 넘게 거리를 이동할 때는 신호가 없더라도 꼭 화장실 볼 일을 보고 이동을 한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없고 옆건물 뒤에 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는 나는  그냥 지나칠까 했던 옆에 있던 유명한 런던베이글 뮤지엄이라는  을 방문하였다.


살짝 빵은 질리지만 저녁거리로  사가지 뭐 이런 생각으로 들렸는데  이런 핫플이라고는 들었는데, 이미 모든 것이 솔드 아웃. 홀린 듯이 나는 일단 사진을 촥촥 찍고  드립백을 2개 결제한다. 핫한 이유를 알겠다. 뭐랄까. 손맛이 있는 콘셉트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은  온통 흰색이다물론, 흰색이 최고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에 유명한 카페들을 여러 군데 가다 보니 이제는 이런 콘셉트도 약간 지루하다. 온통 흰색에 광활한 공간 그리고 시그니처 음료. 그런데 시그니처 음료 중에서 입에 딱하고 맞는 경우도 드므니, 나, 눈이 높아진 것일까?

내방을 어떻게 하면 저 정도의 수준으로 꾸밀 수 있을지 알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든다. 하지만 물론 돈이 필요하겠지만. 여하튼 풍경이 다하는 제주도의 그저 그런 카페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조금 특이하긴 했다. 아직 많은 체인점이 없어서 제주도에 있는 것이 매력적인 요소이기는 하나.


굳이 제주도에 와서 런던 베이글을? 제주도스러움을 느끼고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꼰이다.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면 제주도의 향토음식이나 향토 재료를 기반으로 한 음식이 조금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빠른 결재와 함께 온 목적이었던 화장실을 이용하곤 나왔다. 3분 만에 바로 잡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아 이제 진짜 며칠이 안 남았구나. 생각이 든다.  25일은 11시까지 퇴실을 해야 하고 아, 그보다 먼저 비행기시간은 더 빠르니 25일은 제주도에 없는 날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이제 나에게는 23,24일뿐이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심 마지막 날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다시 한번 방문할 생각이었다. 수미상관이라고 해야 할까.  딱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함덕해변과 델문도라는 카페다. 그곳은 여러므로 의미가 있다. 처음방문은소개받아서 갔으나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실패를 했던 곳. 그곳을 알게 된 이유가 된 사람에 대한 감정이 방문을 할 때마다 바뀌는 것 같다. 그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온전히 보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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