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는 단순히 거주지가 아니다.
1/11일 내 일생에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운전면허는 결혼과도 같다. 내 인생에 없을 것이라고 단단하게 판단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의 증거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참 재미있고, 다채로운 인생의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난다. 생각해 보면 이미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취업 걱정이 없는 기술전문직 치위생사로서의 삶을 생각했던 나는, 뒤늦게 인생이라는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현장에서 적성을 판단하여 지금의 북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안착이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의 나는 안정적인 상황에 놓여서야, '흥미롭고 기대가 된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시간을 되돌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었다. 과거의 힘든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오~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 봐요!'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생각의 반전이다. 과거의 힘든 경험에 방점을 두었던 대답과는 달리, 현실에 방점을 둔 의견이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관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경험해보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는 그 선택의 여파로 많은 것들이 가지치기처럼 생겨나는 것 같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결혼을 함으로써 거주지의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가정과 자녀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2025년 한 해가 시작되면서 남편은 출장을 마치고 들어왔다. 오늘 식탁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게 꾸린 건강식 닭가슴살과 빵을 나란히 앉아 식사를 했다. 올해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집이었다. 올해 12월 22일을 기준으로 집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 생각지 못했다. 복에 겹게도 결혼 전의 나는 부모님 자가집에서 거주를 하면서 이사라는 것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사'가 주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결혼과 함께하게 된 거주지 변동도 큰 자극으로 와닿았다. 그리고 실제로 컸다. 각정 업체들의 날짜를 조율하고 연차까지 맞춰야 한다는 그 스트레스와 업무 중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날을 서게 하였다.
한 번 경험한 이사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이사는 적게 할 수도록 좋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을 구매하여 들어가야 할 것이고, 또 구매해야 할 집은 두 사람의 직장과도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집고 아주 열띤 토론의 결과였고,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이 던져지는 상황에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두통이 오고 있다.
거주지는 단순히 거주지가 아니다. 직장과의 거리, 가정을 보살필 수 있는 여력은 곧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는 유무를 결정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다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가 덜된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판단을 또 한 번 해야 한다. 조금이나마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출산과 육아'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고 있다. 근래 가장 와닿았던 문구는 스웨덴의 노벨상 부부가 던진 질문이다.
'저출산은 여성이 사회진출을 때문인가?'
'사회가 여성에서 아이를 낳을 권리를 주지 않기 때문인가.'
이 질문으로 스웨덴은 출산율이 반등했고, 그 주안에는 출산율을 목표로 한 정책보다는 성평등을 주안으로 둔 정책이었다고 한다. 이런 원대한 질문 앞에 나라의 정책을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든다. 그저 인내하며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모든 것인가라는 대답에 무기력해진다.
아이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올해 말까지라고 마음의 마감날을 정했지만, 집계약 연장 유무를 판단하려면 12월 22일의 3달 전인 9월 22일까지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나의 일기는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직장에서의 혼잡한 상황 등으로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