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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사신 시어미니, 막 나가는 며느리

자기 삶을 잘 꾸리고 사는 어머니

by SHOOT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맞이하는 대명절, 설이 왔다. 지난 '추석'은 남편의 출장으로 시어머니댁에 방문하지 못했다. 몇몇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몇 번이나 권하였고, 나도 몇 번이나 가겠다고 시어머니께 전화를 하였지만, 시어머니는 거절하셨다. 처음 맞이하는 대명절을 아들과 며느리 얼굴을 함께 보고 싶다고 하셨다.



설명절, 설 당일 누구 집에 가?

대명절을 앞두고 신혼부부들의 작은 싸움거리는 누구의 집에 먼저 방문하냐는 관문 같은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 부부는 명쾌하게 '제사를 지내는 집안을 우선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 남편 쪽은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제사를 늘 지내왔었고, 우리 집은 집안 형제자매가 많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려내려가기보다는 이제는 자녀들의 방문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은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명절 당일에 시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제사 전날 저녁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미리 할 수 있는 것을 처리하는 분위기는 남편네 집안 가풍이었다. 이러한 가풍은 결혼을 하고 맞이하는 남편의 첫 생일에서도 느꼈다. 우리 집안 같은 경우, 생일 그날 저녁에 모두 모여 생일 상을 차리고 생일케이크를 하는 문화인데, 남편네 집안은 생일 당일 아침에 생일파티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저녁시간은 제각기 들어오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축하를 함께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납득이 가기도 한다. 보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늦은 저녁 어두운 시간에 초가 빛나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여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우리 집만 본 지라 내가 아닌 다른 집안의 가풍은 어떠하다라고 말할 어떠한 대세를 말할 순 없는 것 같다. 그저 우리 둘이 잘 맞추면 될 뿐이다. 남편의 생일날 나는 자연스럽게 저녁에 준비를 하였고, 우리는 이런 가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자신의 삶, 일터가 중요하신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미리미리 처리하는 습관과 더불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날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이미 하루빨리 제사를 치른 상태였다. 하루 전 날 5~7시쯤 전화가 와서 언제 오냐는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임시공휴일로 아직 설이 아니라는 말에 시어머니도 살짝 당황하신 듯하였다. 몇 번 보지 못한 시어머니지만, 시어머니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시어머니는 이미 제사준비를 끝내고 긴 연휴에 일을 나갈 계획이셨다. 참, 일을 좋아하신다. 살림은 잘 못하신다며 당당하게 말씀하신 시어머니는 그만큼이나 일에 대한 강한 애착감을 보여주셨다.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공무원이었기에 연금이 나오고, 시어머니도 연금이 따로 나오신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으셔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23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을 하시던 몸이기에, 집에 있기보다는 일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니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다시 취업준비기간을 가지던 당시, 시어머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그리고 실습을 하시곤, 더욱이 정신이 온전할 때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자극을 받으신 듯하였다.


시 어머니는 소소하게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을 즐거히 여기신다. 자신만의 삶이 있다. 우리 엄마와 한 살밖에 차이가 안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적 문화 수준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무인계산기, 스마트폰, 스터디카페 이용을 한다는 것이 60대에 있을 만한 일인가 싶을 정도다. 한편, 그만큼 우리 엄마는 편의보다는 우리를 살핀 것 같다. 그래서 문화 수준차이가 중간에서 느끼는 나로서는 때때로 안타깝고 어머니의 헌신에 애잔함을 느낀다.



커피용돈주시는 시어머니

나름 가장 신선한 충격적임은 일하는 동안 힘들면 빽다방가서 녹차라도 사 먹으라고 커피용돈이라며 챙겨주셨던 것이다. 한 푼을 아끼시는 우리 엄마와는 정 반대 스타일에 놀랍고도, 신기했다.


김치를 사드시는 시어머니의 제사상은 남달랐다. 추석 공휴일, 휴일임에도 출근하시어 일을 마무리하시곤 6시쯤 집에 도착하셨자. 한참을 기다린 우리를 위해서 바로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준비하신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시댁에 방문한 것과는 달리, 나를 늘 손님으로 대우해 준다. 기껏해야 나는 채소를 씻고 물을 나르는 정도를 하였다. 대망의 전은, 글쎄 사놓은 팩을 꺼내놓으신고 남편에게 데워달라고 하신다. 와... 사놓은 것도 놀랍고 나를 시키지 않는 것에도 놀라웠다.


분명 시대를 앞서 살았던 것 같다. 시대를 앞서 살았고, 귀하게 자라서 시집와 꽤나 시어머니 구박을 받으시곤 심보가 날만도 한데, 나에게 그 심보를 풀지 않는다. 이 집안은 여자를 잘해준다면서, 나를 귀하여 여기어 주신다. 그렇게 나는 걱정한 것과 달리 시댁에서의 하루를 아니 하루도 아닌 몇 시간을 잘 보내고 왔다.


시어머니는 적적한 마음에 자주 카톡을 하시는 편이지만, 친언니네의 첫째 둘째네 시어머니댁 이야기를 듣고, 드라마 속 온라인 속 시어머니들을 보면서 걱정을 아주 많이 했었는데 이와는 아주 다른 행보에 놀랍다.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나면 또 싫어지는 면모가 차근차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 담그라는 시어머니, 요리하라는 시어머니는 아닌 것에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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