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위의 나

by 디카라떼

나의 일기 중 어떤 이유로 작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록된 바 없다

약 1년간의 부재상태가

사건 자체가 떠오르지가 않아 그리워 할 수도 없었는데

단순히 살아 있었다는 메시지 외에 달리 줄 수 없음에도

뒷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부재상태도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 시기 주위에 남아있었던 것은 30초 남짓의 작은 영상파일인데

거기엔 주인공이 있다는듯 마지막에 2살배기 아이가

하이라이트처럼 등장했고

그 아이가 8살이 된 지금에 다시 보니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안의 모두' 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와 관련된 그리움이 가장 묻어 난다고 할까.


늘 부모님의 모습,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데 초점을 두고는 했다

세상의 변화와, 변해가서 그리울 것들을

덜 그리워 해 보겠다고

카메라를 들던 그 모든 행위들 속에

유독 나를 비추는 초점만 부족하더라.


동갑의 모습 속에서 비취는 뽀얀 모습은

설익은 나를 상상하게 하고,

어엿한 기술자가 된 동생의 초보시절의 모습에서는

부모의 삶을 감당하기 시작하는

순수한 모습도 담겨있었다

하지만 나는 썰물에 떠내려가듯

목소리 하나를 끼워넣은 것 말고는

존재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화면 밖에서 촬영자로서도

존재함이 미약했다는 것을

그래서 기록자로서나 대상으로서나

나를 남기는 것에 의식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미래의 내가 오늘을 들여다보면

분명 오늘 내가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책망하지도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내가 나를 상시 촬영해서 들여다본다 해도

담기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인데

그건 아마 관점의 형성이 돼야 반영되는 그림들일 것이다

내가 최대한 담으려 한다 해도

다 담기는 것이 아니라 , 그 방향성이 커질 뿐

'담겨진 것' 안에서 그리움을 해석해 나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리움이 존재하는 상태일 때

비로소 소중해지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일부분은 놓치는 것이 있는 삶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놓친 그 삶의 여유분과 공백.

미래인이 된 나의 관점에 기회를 주고

상상하게 하고 또 그리움의 시간을 갖게 할 테니까.

어느 때에 찾아올지 모르는 나의 공백이란 캔버스에

순수함을 그려넣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보자

그렇게 마음과 기억의 빈 곳을 채워 나갈 수 있게 되겠지

이건 촬영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관통한 나 라는 작자 간의 소통이랄까

결국 진짜 주인공은 그리워 하는 나 자신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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