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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o Aug 03. 2020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9년 4월 20일 작성한 글입니다.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제목의 이 로맨스 영화는 동질성으로부터 연유한사랑에 대해 말한다. (지코도 이런 노래를 한 적이 있지 않나? 넌 나고 난 너야-는 식의..) 아무튼, 영화의 제목이 발화되는 바로 그 장면이 아니더라도, 엘리오와 올리버에게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은 충분히 보여진다. 유대인이라는 점이 그렇고,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점이 그렇고, 무엇보다 두 인물 모두 갖은 고오급 예술을 이해하고 또 풀이할 수 있는 지적 존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의 사랑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동성애이기도 하고, 서로 지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점에서도 그렇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회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여성이 적극적으로 배제된 시절이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영화에서 마르치아가 활용되는 방식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엘리오에게 마르치아는 올리버라는 종착역으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정류장처럼 보인다. 영화의 말미에서 마르치아는 성자와 같은 관대함으로 엘리오에게 먼저 화해를 권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전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후자는 너무 비현실적인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성행한 남성들의 동성애는 여성을 폄훼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얼마 전 온라인에서 비롯한 흥미로운 담론이 하나 떠올랐다. 꽤 긴 글이었지만 요약하자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자를 사랑할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절대 다수의 한국 남성들이 이성애를 하며 동시에 호모포빅한성향을 띄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발칙한 주장이 어떻게 논증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남성들이 여성과 각종 관계를 맺는 주요한 이유는 ‘다른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것이 해당 글쓴이의 요지였다. 여성집단에 비해 남성집단에서유독 ‘연애 못하는 사람’ 혹은 ‘아다’가 죄악시되는 것, 여학우 품평으로 유대를 쌓는 남학우 단톡방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룸싸롱 접대 문화가 주장의 근거로 채택되었다. 물론 각각의 사례들은 쌍방의 연애에서부터 성착취에 이르기까지 큰 현상적 차이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이어져있다는 것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론의 핵심이다. 개체로서의 여성과 관계를 맺지만 결국 이 게임에서 여성은 '여성인 아무나'로 대체될 수 있는 도구이며, 여성과의 관계를 수단 삼아 통해 남성과의 유대를 쌓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말.


단순히 급진적인 주장이어서인지 아니면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인지, 이 이야기는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 퍼날라지며 한차례 여론을 휩쓸었다. 개인적으로 남성이 여성과 맺는 로맨틱한 관계는 남성의 지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착안은 여러모로 흥미로웠고, 그런 관점에서 고대의 동성애와 현대의 이성애는 생각보다 유사한 관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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