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작성한 글입니다
'실루엣', 우리말로는 윤곽이라는 단어가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실루엣이 다르게 다가온 건 Netflix의 [넥스트 인 패션]이라는 쇼를 보면서부터였다.
런웨이를 지켜본 전문가들이 디자인을 평가하면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단어가 바로 '실루엣'. 쇼의 우승자 역시 매번 남다른 실루엣으로 호평을 받은 민주가 되었다.
민주의 옷에는 '핏'보다는 '실루엣'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핏이 몸에 옷감을 밀착시켜 얻어지는 미감이라면, 실루엣은 반대로 몸의 라인과 천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두어 전체적인 윤곽을 더한 방식이랄까. 한복 등 한국적 테마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디자인에는, 편안하고 포근한 한편 어딘가 아찔해서 시선을 거두고 싶지 않은 그런 곡선미가 있다.
한편, '사이즈'에 갇힌 기성복 위주의 대중 패션 시장에서 '실루엣'이야말로 새롭게 강조되어야할 지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핏'한 옷들은 평균적인 체형에 가장 어울리지만 어떤 체형이건 훌륭한 실루엣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몸선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실루엣에 신경을 쓴 옷들이 더 많아진다면, 다양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패션 프로 하나를 정주행한 뒤 옷에 대한 나의 관심은 수직상승했다. 나만의 실루엣을 갖고 싶어 자라에서 생애 최초로 배기 핏의 바지를 입어봤다. 평생 걸쳐 본 그 어떤 하의보다도 편안했다. 결국 두 개나 사서 집으로 향했다. 소녀시대를 필두로 스키니 핏이 유행하던 때에 취향을 처음 형성한 뒤, 줄곧 몸에 꽉 맞는 바지만 입어오던 나에게 꽤나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비평균 체형에게도 쇼핑이라는 게 불쾌하고 곤란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패션이 실용에 그치지 않고 철학으로 기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몸을 이해하고 내 몸에 적합한 윤곽을 찾는 과정에서 사회가 강요하던 것을 인지하고 그 대척점에서 나만의 것, 취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어떤 실루엣을 추구할지 꾸준히 고민한다면 앞으로 내 몸을 더더욱 사랑하고 아끼게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