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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o Aug 03. 2020

마블학 개론

2018년 11월 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마블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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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절 나의 우상은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의 한 아재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일명 로다주).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아이언맨 역할을 맡은 그의 간지에 치여, 나는 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아버지에게 로다주가 모델로 등장하는 카탈로그를 좀 구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드리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왠 포크레인과 지게차 카탈로그만 잔뜩 되돌아왔다.) 


아무튼, 로다주는 마블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조선사에서 정도전 정도의 비중이랄까. 60~80년대에 이미 그 전성기를 보냈던 코믹스로서의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재탄생하게 된 계기가 바로 <아이언맨>의 메가히트였고, 로다주는 이 작품은 물론 이어진 대부분의 마블 영화에서 연기 뿐 아니라 제작, 연출 과정에서 여러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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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이언맨> 개봉을 시작으로 벌써 10주년을 맞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올해 초 <인피니티 워>의 대성공으로 미친듯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마블은 이미 훗날 영화사의 한 챕터를 당당히 장식할 하나의 사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마블이 잘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CG 기술의 발전이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CG의 발달로 영화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몰입감과 쾌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신기술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서사가 바로 ‘슈퍼 히어로 무비’였던 것이다.


‘슈퍼 히어로’라는 장르는 마블과 DC 두 곳이 양분하고 있는 과점시장이다. 마블 군단의 주요 히어로로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있다.


아이언맨(재벌), 캡틴 아메리카(군 실험체 출신 할아버지), 블랙 위도우(구 러시아 공작원), 호크 아이(그냥 활 잘 쏘는 인간), 헐크(방사능 부작용에 걸린 과학자), 토르(외계인), 로키(토르 동생), 스파이더 맨(거미한테 물린 과고생), 닥터 스트레인지(오리엔탈리즘 뽕을 맞은 외과의사), 블랙 팬서(와칸다 국왕님♡),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다양한 유형의 외계 존재들)

정도다.


한편 DC의 주요 히어로들은 <저스티스 리그>의 출연진, 배트맨(재벌), 슈퍼맨(외계인), 원더우먼(아마존 여전사), 아쿠아맨(인어 왕자), 플래시(무지하게 빠른 애)로 갈무리된다. 어? DC에 더 유명한 애들이 많잖아?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클래식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마블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DC는 영화를 심각하게 못 만들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경각심을 느끼는지, 최근 아동성애적 트윗으로 마블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제임스 건(대표작 :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을 DC가 낼름 새 작품의 각본가로 모셔오기도 했다.


앞서 마블의 성공 요인으로 기술적 부분을 꼽았지만, 그 또한 웬만한 서사의 토대가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팬들은 <캡틴 아메리카 2: 시빌 워>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특히 중요한 작품으로 여기는데, 여기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갈등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실용주의 과학자 아이언맨, 그리고 도덕책같은 당신 캡틴 아메리카. 대척점의 두 인물이 어벤져스라는 한 팀을 구성하게 되면서 쫄깃한 가치관 대결을 벌인다. 여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선대의 과오가 밝혀지면서, 둘은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깨닫는다. 히어로들의 초인적 능력에 매료되어 자주 잊곤 하지만, 마블의 영화들은 의외로 고전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마치 신화처럼 말이다. ‘고대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현대에는 슈퍼 히어로들이 있다’고 한 김영하의 분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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