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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o Aug 03. 2020

서브남이 누구야?/The CW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2018년 11월 29일 작성한 글입니다.

서브남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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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서브남이 대체 누구냐?”

The CW의 뮤지컬 코미디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첫 시즌 절반 정도를 달린 후 친구에게 던진 물음이다. 이미 첫 시즌을 다 본 상태였던 나의 친구는 “계속 봐봐”라고 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을 거진 다 본 지금, 나는 며칠 전 나의 물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되돌아 볼 수밖엔 없었다.


‘서브남’, 서브 남자 주인공은 ‘메인 남자 주인공’을 전제로 탄생한 단어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애정 전선에 일시적인 비구름을 몰고 와, 그들의 운명적 러브 스토리에 MSG를 팍팍 쳐 주는 존재가 바로 ‘서브남’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부분의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남주와 서브남을 찾는다. 드라마-특히 한국 드라마-에서 서브남들은 구김살 없이 다정한 성격에, 여자 주인공을 태양처럼 섬기는 해바라기들이곤 했다. 기시감을 줄이기 위해 남주와 서브남을 구별하는 이런 클리셰들을 타파하는 새로운 설정의 드라마들이 탄생해왔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뼈대는 변하지 않았다. 극의 말미에는 언제나 여자 주인공의 단 하나의 로맨틱 파트너가 정해지고,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그려진다는 것이다.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이하 크엑걸)>은 이런 근본적인 뼈대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여주의 운명적 연인, 남주의 존재’라는 현대 창작물들의 공동전제와 그로부터 파생된 사람들의 일반적 믿음을 깨부수는 것을 제 1 목적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 레베카는 유대계 미국인으로 하버드와 예일을 모두 졸업한 뒤 뉴욕 제일의 로펌에서 근무하는 전세계 상위 0.000001%의 특권층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베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여러 남자들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들의 부재로 인해 계속되는 존재의 위기를 겪는다.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레베카의 추동은 ‘조시를 찾아야 해’, ‘조시를 그의 여자친구로부터 빼앗아야 해’, ‘조시와 결혼을 해야 해’ ‘조시가 나의 운명의 남자가 맞을까?’, ‘아니야, 조시가 아니라 그렉이 운명의 남자였어’, ‘아니야, 착각했어. 역시 조시였어(환-장)’ 등으로 바뀌어 나간다. 레베카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체 누가 서브남이야?’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변주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브남이란 없다. 왜냐면 애시당초 메인 남주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레베카의 좌절은 그녀 내부의 것이며, 그 어떤 외부 관계도 그녀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줄 순 없다. 그걸 깨달은 이후의 과정 역시 만만찮은 것이기에, ‘인생에 남주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레베카의 삽질에 시청자와 주변 인물들은 하릴없이 고통 받는다.


메갈과 강남역에서 워마드와 이수역으로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이 확산되어 오면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담론이 여러 여성 중심 커뮤니티를 휩쓴 적이 있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그들이 전시하는 행위-여성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 하에 스스로 도태된 남성이 아니라는 증표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시즌이 계속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크엑걸 레베카의 모습 위로, 요즘 한국 여자들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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