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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o Aug 03. 2020

영화 <죄 많은 소녀>

2019년 1월 7일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

죄 많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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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섹스와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주로 그렇다. 버젓이 존재하지만 대개 못 본 척하는 세계, 그것에 솔직하기로 한 영화들에는 '19금' 딱지마냥 문제작이란 말이 따라온다.


[죄 많은 소녀]도 문제작으로 불리고 있었다. 문제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나열된 목록이 있다면, 그것들을 매 씬 거침없이 체크해 나가는 영화였다. 감독은 절도, 자살, 따돌림, 동성간의 키스, 생리대-정체모를 파란 액체가 아닌 진짜 생리혈이 묻은-따위를 아무렇지 않게 턱턱 비춘다. 그것도 학교를 배경으로. 그래서 그저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한다. 어려운 영화엔 별 관심 없다고 말하길 좋아하는 온순한 사람들은 더욱 더.


‘여기 나온 인간들 다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누구는 모두가 이해된다고 했다. 두 감상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내 아이를 잃은 황망함으로 다른 아이를 붙드는 것, 그리고 애인의 죽음을 마주하고도 변명이 애도를 앞서는 것. 전부 추접스럽지만 동시에 인간적이었다. 지나치거나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좀처럼 없었다. 감독은 인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인간‘들’의 메커니즘 같은 것에 원체 탁월한 사람 같다. 아마 그래서 다른 게 못되고 영화감독이 된 게 아닐까.


선인과 악인, 피해자와 가해자는 결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허상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 [죄 많은 소녀]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체계가 만드는 비극을 그린다. 하나의 죽음에는 하나의 설명이 필요했고, 그렇게 세상은 영희를 죄인으로 ‘선정’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암시되는 영희의 죽음으로, 세상은 새로운 가해자를 물색하게 될 것이다. 경민과 영희, 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결백의 성전에 올랐다. 경민의 어머니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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