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5일 작성한 글입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곱씹을수록 황홀한 작품이 있고, 파헤칠수록 실망하는 작품이 있다. 불행히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후자였다.
유명 배우의 파격적인 체중 감량, 가만보면 꼭 드랙을 하는 퀴어 캐릭터, 몸에 붙은 나비 떼, 로데오의 역동성, 강력한 실화, 사회 비판적 주제의식 등등 첫눈에 인상깊을 요소들이 이 영화엔 참 많다.
하지만 막상 관객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생각을 하게 하고 싶은건지는 제작자의 의도를 짐작할수록 어째 더 모호해졌다.
그럴싸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매끈하게 붙어있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호화로운 재료룰 갖추어도 조리 과정에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그 음식은 꺼끌꺼끌 입안을 햘퀼 수밖에 없는것처럼.
언젠가 크로키를 배웠을 때, 대상을 잘 담기 위해선 양감 만큼이나 여백을 잘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좋은 예술은 보여주는 것 만큼이나 보여주지 않는 것들을 살뜰히 살핀 결과물 같다.
그리고 달바클은 여백의 미-보다는 여백의 혼란을 갖췄다고 봐야 맞다.
작품 내적으로는 FDA와 주인공의 힘겨루기가 인상깊었다.
때맞춰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해 뇌감염으로 죽는 아이 이야기, cough-buddy라는 명목으로 기침하는 환자에게 쥐어준 곰인형에 수백불을 청구하는 사례 등을 들어본 적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험-의료-제약(혹자는 패스트 푸드, 광고까지 엮는다)이라는 거대 산업들이 만드는 카르텔은, 이른바 '선진국'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공공 의료 서비스에서만큼은 누구도 헬조선을 깔 수 없다.
이런 흐름이라면 왠지 녹지국제병원 이야기를 한바탕 해야할 것 같지만, 그또한 취소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번주에 첫출근을 했더니 저녁만 되면 눈이 침침해져 도무지 액정을 쳐다볼 수 없다.
다음 글은 아무쪼록 요지라는 게 있도록 써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