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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Feb 06. 2023

비건주부, 주부라 더 잘할 수 있어요.

비건주부와 잡식가족의 공생살이

‘비건’ 혹은 ‘비건지향’을 한다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가족도 함께 하는지 다. 남편과 아이들은 여전히 잡식이다. 나의 환경에 대한 실천을 평소 옆에서 지켜본 덕에 가족들은 나의 비건지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음식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니 가족들은 조금 한숨을 돌린 기분이랄까?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삶은 당연히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배달음식도 쉽지 않고 용기를 들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사 와야 했고 식탁에서 휴지 한 장 쓰는 것도 다들 주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은 순전히 나의 영역이었고 가족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사적영역이기도 했다. 고기를 먹지 않게 다던 엄마의 선언이 어느새 알류, 생선류, 유제품 영역까지 넘어가고 있었으나 가족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가족 누구에게도 비건 혹은 채식을 하자고 권유하지 않았다. 다만 식단을 내가 알아서 정하면 되는 거니까,  사실 주부가 비건이 되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많다.  반찬에 대한 응용력도 더 풍부해지고 식자재에 대한 정보도 이미 있으니 가감만 하면 되기에 나는 주부가 비건이 되는 걸 진심으로 추천한다.

  

내가 먹는 음식을 넘어 가족 식단에서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기존 반찬에서 육고기를 빼서 반찬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스는 갈비찜인데 갈비가 없다. 카레에도 돼지고기가 빠진다. 잡채에도 잡채용 고기가 없다. 김치찌개도..... 모든 메뉴에서 육고기가 들어갔다면 육고기만 빼고 반찬을 해봤다. 몇 번은 괜찮았지만 기존 음식에서 육고기를 빼는 일은 가족들의 실망이 높아졌다. 냄새는 분명 아는 향인데 막상 식탁에 와서 보면 기대했던 메뉴가 아닐 때 없는 실망감 역시 올바른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육류반찬을 줄여보고자 한 것이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맞춰 나가는 것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잡식가족들을 위해 고기요리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로 적응해 가면서 어느 순간 우리 집 식탁은  1끼에 1개의 고기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원칙이 조금씩 적용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육수로 국물을 내는 것을 멈췄다. 할 수 있는 한 채수를 이용했다. 깊은 말이 필요할 때는 야채를 볶아가며 국물을 우려내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역국은 쇠고기 미역국만 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소고기가 아닌 감자, 들깨, 오트 밀크 등을 이용해 맛을 낼 수도 있고 그냥 미역만 잘 볶아 끓여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었다.


한 가지 음식을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하는 재미도 점점 늘어갔다. 또 식재료를 살 때 가성비가 아니라 재료 자체가 좋아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도 더 깨닫게 되었다. 야채하나를 살 때도 친환경적이고 상태가 좋은 제품들을 고르게 된다. 그게 바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버릴 것 없이 잘 씻어 껍질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면 유기농 야채를 살 수밖에 없어진다.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등을 구분하고 왜 사야 하는지 이유가 더 확실해지는 것이다. 하나를 사더라도 더 좋고 제대로 된 것을 고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하니  장을 볼 때 꼼꼼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살려고 갔으나 마음에 드는 식자재가 없으면 빈 손으로 오는 과감함도 생기기 시작했다.


3년째 들어서면서 가족들 모두 동의하고 잘 바뀌었다고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인 거 같다.

 1. 계란을 소중히 2. 우유는 식물성유로 3. 가공식품을 최소화     

 

우리 집은 한 달에 사는 계란의 수가 정해져 있다. 닭들이 시골 앞마당에 뛰어놀며 곡식을 쪼아 먹고 아침에 닭장에서 한 두 알 빼오던 그런 달걀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건 이제 로망이다. 우리가 먹는 계란은 공장식 축산의 한 부분이다. 닭들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알을 낳고 사료 역시 GMO 콩이나 옥수수들을 갈아 뭔가와 섞인 사료를 먹고 비실비실 거리다 어느 날 죽음으로 향하는 곳에서 나온다. 과연 이런 곳에서 나온 달걀을 먹어야 하는가?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찾은 답은 조금 비싸도 방사된 환경에서 가급적 화화적 사료가 아닌 율피등 자연에 가까운 사료를 먹고 자란 유정란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에 40알, 최근에는 1번 사고 2달 가까이 먹는 거 같다. 예전처럼 달걀찜을 4~5개의 계란을 이용해 만드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계란찜을 좋아하는 아빠와 둘째만을 위해 2개 정도의 계란을 이용해 찜을 한다. 가끔 알이 작다 싶으면 3개까지 사용한다. 당연히 계란말이 역시 고급음식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집에서 라면에 계란까지 넣어 먹을 때는 사치품이 된다.     


 어릴 때부터 우유를 많이 마셔야 뼈가 튼튼하고 키가 큰다고 들어왔다. 늘 나의 작은 키를 우유를 많이 못 마셔서 그런가? 하는 의문 속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나는 우유를 마시고  장이 불편한 편은 아니었는데 우리 둘째는 우유를 마시면 아기 때부터 설사가 이어졌다. 분유를 먹을 때도 맞는 분유 찾기가 쉽지 않던 아이였다. 그래도 우유는 꼭 마셔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초등학교 우유 급식 신청도 빠짐없이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는 장이 불편해 우유를  가방에 가지고 오는 날이 많았다. 그놈의 영양소, 2군, 칼슘, 우유 이 단어는 세뇌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건으로 바뀌고 조금씩 공부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당연히 소의 우유를 마시는데 100% 맞을 수 있는가? 역으로 그들을 통해 공급되는 우유가 무조건 영양이 높고 우리가 마셔야 하는가? 아니었다. 물론 공장식 축산업의 현황과 젖소의 삶까지 생각해 확장해 나간다면 더 마실 수 없다. 하지만 나와 달리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그러한 영상들을 보여주고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영양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을 했고 우유가 아니더라도 두유, 오트유 등을 맛보게 하면서 조금씩 가족들도 장점을 알아갔다. 남편 역시 우유가 맞지 않는데 이제는 카페를 가면 먼저 오트유나 두유 등 우유대신 식물성유로 변경이 가능한 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초반 아이들의 경우 우유가 갖는 진한 고소함을 버리지 못했으나 최근 유통되는 오트유등은 아이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시리얼에 우유가 아닌 오트유를 이용하게 되었다. 우유를 사지 않은 지는 6개월이 넘어간다.   

   

다음은 육류나 물살이류 등을 제한하기보다 햄, 참치, 소시지, 맛살 같은 가공식품류부터 제한하고 있다. 비건, 채식지향을 가족에게 강요하기보다 설득력 있는 건강을 우선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것이 가공식품이었다. (첨가제의 문제나 밝힐 수는 없으나 증가하는 여성불임, 암의 증가 등과 연결해 어렵고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넘기겠다. 내 영역이 아니므로.) 이미 급식등으로 집 밥 외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반찬들이다. 굳이 이런 식자재를 집에서 사용해 가며 줄 필요가 없다고, 더불어 주부인 내 입장에서 이런 가공식품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일임을 이야기하며 하나씩 식탁에서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다 남편이 김치찌개를 요리할 때 참치캔 1통을 산다. 또 분기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의 요청이 있으면 스팸, 햄류 등을 사서 구워주는 형태로 변하면서 과거처럼 참치캔, 스팸을 묶음으로 사 오는 일은 사라졌다. 적어도 집에서 건강한 밥상을!이라는 슬로건이 가족들에게도 박히기 시작했다.


 가공제품을 줄이면서 가장 크게 나타난 변화는 남편의 짠맛 사랑이 줄었다는 것이다. 짜고 맵게 먹는 자극적인 간을 좋아했던 남편이 요즘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을 때 종종 짜다라는 말을 하는 게  여전히 신기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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