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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Jun 21. 2023

천명관 [고래]를 읽고

친절하지 않은 책리뷰

이 책은 2004년 출간되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나 (영국에서 출간된 그해 최고의 외국소설을 뽑는) 부커상 후보작에 올라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읽다 중간에 멈춘 기억이 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30대 중후반 무렵 인 듯하다. 도입이 읽어 나가기에 너무 원색적이라 거북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 소설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르면서 진로 북클럽에서 6월 도서로 선정하여 다시 읽어 볼 기회를 만들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와 달리 미친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 읽었다. 올해 읽은 책 중 흡입력으로만 따지자면 작년에 읽었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만큼 강력한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출간되면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여하였음) “이것은 허풍이며 또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반응되었다고 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각종 괴담이나 설화, 외설? 야설? 등이 포함되어 읽다 보면 요즘은 통하는  일반적인 장르파괴가 돋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호러스러운데 재밌고 한국적 정서도 들어가 있으면서 곳곳에 세련된 문장들이 감정을 훑는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처럼 장면이 흘러가는 시각화가 되어 판타지스러우면서도 기이한 요소들이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을 다 읽고 찾아본 평 중 가장 공감이 갔던 한 문장이 있다. 장항준 감독이 말한

팀 버튼이 토지를 쓴 거 같다.

라는 평이었다. 팀 버튼을 좋아하고 토지를 작년 재독 해서인지 연신 ‘맞네 맞아’ 하며 공감을 격하게 했다. 날 것, 원색적이고 정제되지 못하지만 기이하고 그런데 아름다움이 숨어있고  몽환적인 느낌이 팀 버튼의 작품세계와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런 기이한 아름다움과 날 것이 주는 원색적인 표현들을 무기 삼아  국밥집 노파에서 금복이 그리고 춘희로 이어지는 세 여자의 세대를 이은 삶의 모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이 버무려져 대하소설 같은 토지의 스멜을 풍겨내며 주인공들을 부각시켜 준다.      


소설 속 재미의 요소 중 색다른 것은 동식물이 주는 상징성이다. 특히 고래와 코끼리의 등장이다. 두 동물 모두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에 해당되는데 고래는 금복이와 연결된 상징으로 욕망을, 코끼리는 소설 속 한 때 서커스 단원이었던 쌍둥이 자매의 반려동물로 이후 춘희와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또 주변인물이기는 하지만 국밥집 노파의 딸이었던 애꾸가 몰고 다니는 벌도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며 각 인물들과 연결 지어져 여러 상징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에 금복이의 사업가로의 성장과정이 현대 한국 사회의 성장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어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부조리를 묘하게 엮어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을 교묘히 돌려 까는 싸한 기분도 든다. 인간이 나쁜 것인지 사회가 부조리한 것인지 그래서 마지막에 부를 거머쥔 금복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는, 생물학적 여성에서 젠더적인 개념의 남성이 될 때 불편함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는 생각마저 하며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점점 금복이를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국가나 사회의 이미지와 겹쳐져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동일선상이었다. (나에게는)      


이야기는 욕망 덩어리 금복이가 주를 이루어 나가지만 책을 덮으면 결국 춘희가 남는다. 그래서 왜 제목이 금복이가 떠올리는 고래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마침 지난주에 있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고래 북토크를 통해 작가는 이유를 밝혔다.


‘고래’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저는 원래 제목으로 ‘붉은 벽돌의 여왕’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출판사에서 ‘왕’이나 ‘여왕’이 제목에 들어가면 망한다며 반대를 했다. 결국 다른 제목을 찾다가 ‘고래’로 정했다. 저는 여전히 아쉽다. 물론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웃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9QWJW05GV


아.... 다행이었다. 작가에게도 금복이보다 춘희가 주인공이었다는 게.      


춘희는 금복의 딸로 쌍둥이 자매가 키우는 코끼리 우리에서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그녀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 거기다 지적 장애아로 태어나 말도 하지 못한다. 대신 춘희는 물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독특하'고 '그녀의 몸속엔  오감을 통해 ' 섬세하게 주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코끼리와 특유의 형태로 교감을 나누고  의붓아버지인 '文'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우며 자신만의 외롭고도 고독한 삶에서 희망의 빛을  만들며 세상을 살아 나간다.


국밥집 노파의 복수 때문인지 금복의 파멸과 함께 고래극장의 화재사건이 발생하고,  춘희는 방화범으로 지목되어 감옥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출옥 후에는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혼자 벽돌을 굽다 외로운 삶을 마감한다. 춘희가 죽고 한 참이 지난 뒤 그녀가 만든 질 좋은 벽돌을 찾아 헤맨 한 건축가 의해 그녀는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남게 된다.      


소설에서 춘희는 고래나 코끼리처럼  마치 신성한 존재마냥 느껴졌다. 외모 역시 고래나 코끼리처럼 덩치도 컸고, 그녀가 가진 장애는 욕망이 가득한 우리네와 달리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주변과 교감했으며, 그녀의 고독이 짙어질수록 더 질 좋은 벽돌을 만들어졌는데  이는 복수의 화신 노파에서 욕망의 화신 금복이의 모든 죄까지 춘희가 끌어안고 정화작업을 하는  듯 신성함 마저 안겨 주었다.      


이 글을 쓰다 문득  춘희를 따라다녔던 개망초가 떠올랐다.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 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p.189


알고 보면 춘희는 이 개망초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내가 미처 찾지 못했음에도 작가가 고래와 코끼리로 개망초를 계속 숨겨둔 기분이 들었다. 한낱 여리디 여린 개망초 같은 춘희가 그렇게 처연하게 살다 갔구나 싶어 순간 펑 터지는 눈물은 작가에게 속은 배신감 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      


말이 길었지만 많은 이들의 평처럼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의 소설임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결국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색을 가지고 있지만 읽기 시작하면 결국 끝을 보게 되는 책이다.  



복수의 화신 국밥집 노파

그녀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삯바느질이나 허 드렛일은 물론 논일 밭일 가리지 않았고, 일이 없을 때는 산에 들 어가 약초나 나물을 캤다. 웬만한 추위에는 군불도 때지 않았고 옷 은 주워입거나 얻어입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더럽고 궂은일 은 모두 그녀의 차지였다. 그녀는 언제나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 간혹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늙고 눈 어두운 홀아비들에게 는 돈을 받고 몸을 팔기도 했다. 이십 년이 넘게 그녀는 한결같이 돈을 모으는 데 자신의 모든 공력을 바쳤다. 사람들은 노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많은 돈을 모아서 뭐에 쓰려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거기에 대해 노파는 단지,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만 대답했 다. 그녀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사람들은 노파가 너무 고생해서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다고 여겼다. P46

노파는 겁에 질려 쳐다보는 춘희를 보고 썩은 이를 드러내며 희 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어서 두부를 받으라는 듯 눈짓을 했 다. 춘희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두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두부를 베어먹었다. 비릿한 냄새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노파 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옆에서 춘희 가 먹는 양을 지켜보다 어느샌가 함지를 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일찍이 남의집 부엌살이로 떠돌다 딸에게 연인을 빼앗기 고 버러지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지만 끝 내 한푼도 못 써보고 결국 그 돈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 한 많은 생 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타 죽게 함으로써 스스로 복수를 완성한 노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P448

욕망덩어리 금복

그녀에게 '적당히'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P195

금복은 마침내 자신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끝없이 상실해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한 셈이었다.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 고, 첫사랑을 상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젊음을 상실해 버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모두가 빈껍데기뿐이라는 것을 그 녀는 싱그러운 수련의 육체 앞에서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P336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 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 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 위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 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그 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 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P.345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합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P383

개망초, 춘희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 름은 춘희春姬이다.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그녀는 한 거지 여자 에 의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 램에 달했던 그녀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벙어리였던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 고립되어 외롭 게 자랐으며 의붓아버지인 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웠다. P9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 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 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P189


그녀는 여전히 말을 못했지만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깊어져 그녀의 몸속엔 오감을 통해 얻은 정보가 차곡차곡 저장되어가고 있었다 p.192


며칠 뒤, 춘희가 되는대로 이겨놓은 진흙을 본 文은 그녀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춘희가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물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독특 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에게 벽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중략)
文도 처음에는 춘희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한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말도 못할뿐더러 사람들이 하 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가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구태여 언어가 아니더라도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느낌과 감정을 통해 대화가 가 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P.290


그간 춘희의 수형생활은 침묵과 망각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 녀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을 피해 구석자리 를 찾아다녔다. 그동안 새순처럼 여리고 무구한 춘희의 감성은 깊 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증오 나 교묘한 복수심으로 바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엔 고통이 화석처럼 굳게 자리를 잡 았다. 그것이 춘희의 방식이었다. P445



혼자 벽돌을 굽는 동안 그녀는 점점 더 고독해졌으며 고독해질수록 벽돌은 더욱 훌륭해졌다. 공장 뒤편의 너른 벌판은 점점 더 많은 벽돌들로 채워져갔다.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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