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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톨 Sep 28. 2018

서늘한 마음

추석 시댁에서.

명절이 지났다. 이번 명절도 예전과 다름없이 먼저 시댁에 내려가서 하룻밤, 다시 친정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났고 매해 설과 추석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양가 방문을 했다. 남들은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아예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쉰다지만 남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장남 노릇에 열심이다. 내려가기 싫다고 말은 해도 막상 도착하면 부엌일이며 전 부치기까지 나서서 아주 열성이다. 


시댁은 아직 시할머니께서 살아계시고 시어머니, 아가씨, 숙부님 두 분, 한 분의 숙모, 학생들이 명절에 모이니 우리 부부까지 합쳐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집에 있는 격인데 명절마다 꽤나 떠들썩하다. 남들이 제사며 차례며 간소화하기 바쁜 동안 이곳에서는 예전과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실 숙모님 한 분은 암투병 중에 돌아가셨고 다른 한 분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으신다. 시어머니는 내 결혼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거의 걷지도 못하시다가 몇 년 전 수술 후 나아지시더니 지난달에 넘어지시는 바람에 꼬리뼈에 금이 가 한 달이나 병원 신세를 지셨다. 명절 전 전화통화로 이번엔 못하시겠다며 말씀하시더니 막상 내려가 보니 차례 음식이 산더미다. 대바구니마다 전이며 생선이며 말끔히 손질된 나물이 담겨있다. 이제 7시간 넘게 운전한 신랑과 내가 앉아서 새우와 오징어를 튀긴다. 한참 튀기면서 더러 집어먹기도 하고 바구니를 채우다 보면 두 시간이 금방이다. 나는 왜인진 몰라도 의무감을 갖고 설거지를 담당한다. 찬물에 손을 담그고 애써 피로와 졸음을 쫒아내 본다. 나서서 요리를 돕는 신랑에게 시어머니, 숙모님 할 것 없이 모든 어른이 칭찬을 계속 해댄다. 우리 애한테 맡겨두면 신경 쓸게 없다, 타고나길 요리를 좋아해서 그렇지 안 그러면 저렇게 못하지, 신랑 잘 만났다 등등. 신랑이 손사래 치면서도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지 마세요. 저 와이프한테 욕먹어요. 시어머니가 애써 웃으신다. 


설거지를 하고 미리 주문해놓은 회를 한 상 차린다. 마당에 푸른 큰 비닐을 깔고 상이 깔리면 10개의 수저를 놓고 밥그릇, 국그릇도 준비한다. 부엌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내가 앉는다. 중간중간 모자란 식기나 음식을 내가 가져오기도 하고 신랑이 움직이기도 한다. 다들 식사를 하고 건배도 하고... 식사 마치기가 무섭게 다시 일어난다. 설거지거리가 너무 많아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수세미질을 한다. 신랑이 곁에 어슬렁대며 도와줄 건 없는지 눈치를 살핀다. 눈도 잘 안보이시는 숙모님이 도와주시기도 하지만 마음이 퍽 불편하다. 결혼 후 첫 명절부터 그랬지만 여기선 숙모님이 손으로 더듬거리며 설거지며 걸레질을 하는 것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종종 시 할머님의 타박이나 시어머니의 불평이 몇 마디 있을 뿐이다.  시 할머님의 타박은 비단 숙모가 명절일을 잘 돕지 못하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설거지하는 내 옆에 서신 시어머니께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숙모님 내외의 외동딸, 그러니까 남편의 친척동생은 입양된 아이이고 본인은 자신이 입양된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인 시 할머님 입장에선 '자식도 못 낳고, 아파서 일도 못 하는' 며느리니, 타박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잘 보이지 않으니 종종 실수하게 마련이고, 일이 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손발은 바지런하신 할머님 곁에서 종종거리며 거의 모든 일을 하시는 시어머니는 숙모가 안타깝긴 해도 답답하니 불평을 하실 수밖에.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신비한 계기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모든 이유를 내가 알게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숙모님을 타박하는 말을 듣는 내 마음은 서늘해질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누구의 입장에도 전적인 찬성이나 반대를 하고 싶지 않다. 내 이해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실 완전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남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만약 구구절절한 설명을 붙여서,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남을 이해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서로를 꽤 오해하면서 산다. 그러니 섣부른 오해를 인정하는 것이 남을 이해하는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다.


다음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 갓 신혼이었을 때에는 몇 번 절도 했었지만 이제는 상 차리기만 돕고 절은 하지 않는다. 우연찮게 내가 절을 하고 싶지 않아진 때와 내게 절을 더 이상 권하지 않는 때가 잘 맞물린 까닭에 누구도 불편하지 않았다. 차례가 끝나고 아침을 차려 먹는다. 다시 10인분의 설거지를 하고 숙부님들과 신랑이 성묘를 가면 두어 번 손님상을 차리고 치워낸다. 깎아둔 사과나 전을 조금 챙겨 내면 그만이다. 커피나 막걸리를 권하기도 한다. 집에서라면 그냥 쓱싹 해버리고 말았을 몇 개의 커피잔 설거지를 일부러 남겨두고 짐을 챙긴다. 시어머니께서 성묘를 마치고 온 신랑에게 이제 아들 얼굴 좀 보게 앉자-고 말씀하신다. 빨리 가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는 신랑이 참 겸연쩍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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