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30. 12:32
ㅣ.
요즘 내 일기의 독자는 남편이다.
내 생각을 다듬어 자전 소설 처럼 만들겠다고 다짐한 후 부터는, 맘카페나 사람들이 호응을 안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대신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글이 매끄럽게 읽히는 지, 문맥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지 확인을 부탁한다.
남편은 나보다 더 말이 많은 사람이다. 3년 전에 이미 노자의 '도덕경'을 주제로 책을 출판한 적이 있다. 3~4년간, 매일 도덕경의 한자 문구 하나 하나 뜯고 파더니, 결국 자신만의 도덕경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나를 남처럼 바라본다' 이다. 한참 아이들의 손이 많이 타던 시기였는데, 남편은 매일 출가하여 불경을 읊는 스님처럼 자리이타, 색즉시공 공즉시색, 마음의 평온을 찾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 영어 레벨이 떨어져서 속이 상하고, 선행이 부족해서 들어갈 반이 없다는 소리들로 늘 화가 나던 시기였는데, 남편의 '있는 것이 곧 없는곳이요, 네가 곧 나이다' 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한참을 남편과 사이가 안좋았고, 마누라가 그렇게 싫어했어도 남편은 도덕경 수양을 기어코 다 끝내서 결국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금은 다시 가정적인 아이 아빠로 돌아왔다.
처음 서초맘카페에 "영어유치원에 대한 단상"과 " 일반유치원 나온 큰아이 이야기"를 올렸을 때, 남편은 폭발적인 좋아요 수와 댓글에 많이 놀랬다.
남편 또한 블로그에 공부하던 도덕경과 리더쉽에 대한 고찰을 적곤 했는데, 내 글 같은 폭발적 반응은 보질 못했던 것이다.
후후후
맘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고민은 거의 비슷하다. 자식의 교육문제거나, 또 교육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엄마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노렸다. 영어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일반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는, 보내기 전 미취학 엄마들에게는 늘 풀지 못하는 난제이고, 이미 다 키운 중고등 엄마들에게는 '애 마다 달라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화수분의 글거리였다.
보통 아이들이 미취학, 또는 초등 저학년의 시기에 맘 카페에 자주 들린다. 아이가 본격적인 교육경쟁에 접어드는 시기이고, 엄마들의 인맥들은 아이들 위주로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조회수는, 많은 이의 관심을 끄는 소재를 택해서 공감을 이끌면 올라간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시피,나는 '사기꾼'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2.
맘카페에 글을 올리기 전에에는 주로,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수다쟁이었다.
아이들의 학원과 교육에 대하여는 마르지 않는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각각의 아이들 상황에 따라 엄마입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견해들을 전해주었다. 나는 동네 아줌마들과 자주 커피타임을 가졌고, 몇몇 엄마들은 현실적인 도움도 얻었다.
마치, 결혼하기 전, 신규사업팀 다니던 시절에 그러했듯이, 내가 가진 지식은 비루했지만, 말로서 상대를 설득하고 위로해 주었다. 아이들은 "엄마! 엄마는 왜 전화 할 때마다 통화 중이야? 도데체 아줌마들이랑 몇시간을 통화하는 거야?" 라고 할 만큼, 나는 수다스러웠다.
그랬는데, 덜컥.. 10년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하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 자식과 같은 학원을 다니고,
같은 고민을 주고 받던 동네 지인들은, 아직도 가끔 안부를 전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지 않는다.
매일 일상의 안부를 나누던 벚꽃아우디 멤버들 또한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바빠, 나의 하소연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바라던 자가 구입을 했는데도, 마음이 외로왔다.
새로운 동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소비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서초맘카페에 나의 '수다본능'을 털어 놓았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호응할, 노골적인 주제를 골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3.
만일 내가 방송작가 쪽으로 진로를 잡았더라면, 꽤 괜찮은 직업만족도로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나는 타고난 수다쟁이면서,
집요한 검색광이며,
꽤 영리한 전략가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소재를 발굴해서, 흥미롭게 스토리텔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기꾼'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능력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IT'분야 마케팅 담당자라는 나에게 생소한 분야에 들어가서 몇년을 버텼는데, 결국 그 회사도 망하고, 내 직업 커리어도 망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지적 호기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내가 경험해보거나 귀동냥하지 않은 일을 창조해 낼 만큼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전문 마케터가 되거나, 소설가로 등단하지 못했으리라.
내 네이버 아이디는 Laura5이다.
Laura는 미국 소설 '초원의 집'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초원의 집'은 내가 어렸을 때 일요일 아침마다 하던 미국 TV 시리즈로 유명하다. 나는 Laura를 ABE 전집에서 처음 접했다. 어릴적 살 던 집 2층에는 빼곡히 책들로 가득찼었는 데, 거의 브리테니커 백과 사전이나, 네셔널지오크래픽 전집류들이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동화책들은 ABE 전집 뿐이었고, 그 전집은 70여권이나 되어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고를 수 있었기에 나는 매일 그 책들을 읽으며, 상상의 꿈을 꿨었다. (사실 디즈니 세계명작 전집 같은 글밥 쉽고, 예쁜 전집을 읽고 싶었지만, 감히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원의 집'이 유명했지만, 나는 이 작가 Laura Ingalls Wilder 의 제일 첫 이야기인 '큰 숲 작은 집'을 아주 좋아했다. 작가와 주인공 이름이 같다. 맞다. 이 시리즈는, 저자 LAURA INGALLS WILDER의 자전 소설이었다.
'큰 숲 작은 집'은 1800년대 후반 서부 개척시대에 미국 북서부 위스콘신 주 숲속의 생활상을 자세하고 묘사했다.
아빠가 라이플 총을 가지고 사슴 사냥을 해 온 이야기, 야생 돼지를 잡아 돼지 오줌보로 공을 만들어 놀았던 이야기, 받은 헝겊인형 샬럿을 소중히 여기고, 정향을 가득 박은 사과 한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감사히 주고 받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묘사했다. 그런 작가의 필력 덕분에 이 소설은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TV인기 시리즈로 재탄생했지만, 나는 정작 TV시리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좋아했던 것 같다.
먹고 살만한 집 막내딸로 태어난 덕분에, '빨리 취직해서 부자가 되어야 겠다' 라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대신, '언젠간 마당 넒은 집에 강아지를 풀어 키우면서 나도 로라 잉걸스 와일더처럼 나의 일생을 나만의 소설 집필하리라'라는 순진한 꿈을 꿨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는 어린 시절 내 꿈의 멘토였다.
그 꿈은 대학은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하늘과 같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희미해지고 사라졌다.
laura는 단지 인터넷 세상을 들어가는 내 Id카드 정도로 남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사춘기들어서면서,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빈 집에 혼자 시간을 외로이 보내면서, 나를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 결구 여기로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하느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였으리라.
나는 독특한 발상과 이야기 전개를 꾸미는 능력은 없지만, 어쩌면, 로라 잉걸스 와일더처럼, 나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라고 재능을 주셨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꽤나 독특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매일 매일 한편의 시트콤과 같은 일들이 있다. 나에게는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글의 재료들이다.
내 인생 시트콤 소재들에게 늘 사랑을 전한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