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9. 22:09
대학교 4학년 구직활동을 할 무렵부터 나는 살짝 느꼈다.
나는 사실 사기꾼일지도 몰라....
이 무렵 나는 이 곳 저곳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여대 정치외교학과 스펙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대학4학년에 겨우 얻은 토익 900점 성적으로, 그저 적당한 회사에 취직했다.
꽤 여러곳에 합격했고 그 중에 골라서 입사를 했다. 일단 서류 전형에 붙어 면접까지 오르면 면접관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 참하거나 여성스런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X세대다운 자신감있는 목소리와 톤, 그리고 논리정연한 대답은 언제나 좋은 점수를 이끌었다. 나는 상대방의 의도를 눈치빠르게 금방 알아챘고, 면접관이 좋아할 멘트와 내 경험을 적당히 섞을 줄 알았다.
게다가, 나의 글빨은 그때도 현란했다. 나의 자기소개서를 보라...인사담당자가 흥미있어할만한 포인트를 내 경험과 비비고 약간의 진실왜곡과 MSG를 첨가하면, 비록 내 스펙이 조금 간당 간당했어도 서류전형은 통과했었다.
이때 깨달았다.
나에게는 말과 글로 상황을 모면하는 사기꾼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물론 나는 사기를 치고 다니진 않았다.
사기치기엔 나는 소심했고,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대신 말과 글로 상대를 현혹시키는 일을 해 오긴 했다.
그 첫번째 일은, 내가 IT기업 마케팅 담당자로 취업한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pda를 만드는 200명 정도의 중소기업이었다. 2000년대 초, 그 당시 휴대폰 시장을 모토롤라 Razor가 꽉 잡고 있었고,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PDA에 통신 기능을 넣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보를 검색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나는 신규사업팀이라는 부서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신제품 홍보방향을 설정하고, 이벤트를 구상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고백컨데 그리 열정적으로 하진 않았다.
아직 위대한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하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 연아의 햅틱 같이 큰화면의 휴대폰을 내놓기 시작했고, 휴대폰 성능으로 삼성과 경쟁하기엔 이 회사는 너무 작은 회사였다. 망해가는 회사 직원이 그러하듯, 나 역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회사 전반의 분위기가 다들 누가 먼저 먼저 빠져나가나 눈치 보는 중이었고, 좋은 곳으로 스카웃되어 가는 동료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사장님은 나와 신규사업팀을 거의 매일 불렀다. 사장님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놓으셨고, 나는 그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지만, 오로지 인터넷 검색질 만으로 이 사업을 하는 데에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 지, 필요한 인원이 얼만큼인지를 브리핑했다. 브리핑 준비하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나 사장님의 아이디어는 딱 봐도 어마무시한 인원과 자본이 들어가는 거였으니, 그런 위험성만 조금 더 부풀리면 됐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은 월급을 루팡질하고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아주 열심히 일하는 몇 안되는 직원으로 보였나보다. 이 때도 느꼈다.
나는 어쩜 진짜 사기꾼인가봐....
그 회사는 결국 망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전에 남편을 만나, 전업주부로 돌아섰다.
아이가 유치원과 학원에 다니면서, 내 인간관계가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다. 통화목록엔 고등동창이나 직장 동료 대신에, 아이 유치원 같은 반 아이 엄마들과, 다니는 피아노 미술 학원 선생님들 연락처로 채워져갔다.
엄마들의 관심사는 같았다. 내 자식의 높은 레벨. 아이가 수학학원에서, 영어학원에서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