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을 덮친 후 이곳은 난리도 아닙니다. 제가 사는 뉴저지에서는 사실상 자택 대피령이 내렸고요, 오후 8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아예 통행 금지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쓴 아시안을 코로나 환자로 의심하는 분위기라 마스크 쓰는 것이 불편했는데 미국인들도 이젠 마스크를 거의 쓰는 추세입니다. 보통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중무장한 미국인들도 더러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상황을 '전시'라고 표현했지요.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 충분히 있었는데 열심히 준비 안 하고 사태를 과소평가했는지 책임을 묻고 싶지만 생략하고, 겪어 보지 못했지만, 전시 맞는 것 같습니다. 적이 다른 나라나 조직이 아닌 바이러스라는 게 좀 특별하지만요.
존스홉킨스대의 집계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총 16만4610명입니다. 사망자도 3170명이나 됩니다. 기본적으로 거대한 인구가 사는 나라라 하루 단위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치 자체가 공포스럽습니다.
코로나는 미국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습니다. 일부 무책임한 개인주의와 정부의 늑장 대응, 불합리한 의료체계는 빠르게 미국을 확고한 코로나 확진 1위 국가로 만들어놨습니다.
정부 지침 어기고 코로나 파티
코로나 파티를 아시나요? 말 그대로입니다. 집에 있으라는 주(州)나 지역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이 시국에 보란 듯이 파티를 하는 거예요.
지난 27일 뉴저지에 사는 47세 남성이 거의 50명의 지인을 자신의 15평 남짓 되는 아파트에 모아놓고 코로나 파티를 벌였대요. 이 소식을 접한 필 머피 뉴저지주지사는 분노에 찬 트윗을 날립니다. "내가 이걸 모두에게 두 번이나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 코로나 파티는 안 된다. 그것은 불법이고 위험하며 멍청하다"라고요. 코로나 파티를 벌이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하고 이름을 밝히겠다고도 경고했어요. 네. 다 큰 어른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머피 주지사는 몇 차례 코로나 파티를 하면 그 파티를 망쳐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놔야 했어요.
제가 30여 년을 살아온 곳에서보다 개인주의가 더 강조되는 사회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비상시국에도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코로나 파티는 뉴저지에서만 있던 일이 아닙니다. 메릴랜드와 켄터키 등 다른 주에서도 일부 개인들이 코로나 파티를 벌였어요. 켄터키 주의 파티에서는 실제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어요.
마스크 써? 벗어? 어쩌라고.
정부는 잘 했냐구요? 아니요. 솔직히 저는 한국 뉴스를 접하면서 코로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정말 부족했나 싶었습니다.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니까 정말 대응이 잘 못 됐나 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상황을 겪어보니 한국 국민과 정부는 코로나에 정말로 대응을 잘한 것 같아요.
게다가 미국은 코로나에 대응할 시간이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프에 나타나지만, 미국에서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한 것은 3월이에요. 3월이라고요. 무려 3월이요. 1월부터 이미 중국에서는 난리가 났잖아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할 때 트윗을 씁니다.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과 투명성에 감사하다"라고요.
그러나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니 매우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말합니다. 사태의 책임을 중국에 분산시키려는 거죠. 바이러스를 둘러싼 중국 정부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미국 정부가 대응을 잘 못 한 것을 그런 수사로 희석하려는 태도는 정말 무책임하다고 봐요. 인종주의에 기름을 붓는 이러한 언사도 대통령에게 적합하지 않구요.
지침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초기에 마스크 사용을 권장하지 않았어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어요.
한국에 계신 엄마가 마스크를 구하라고 채근하실 때만 해도 저는 CDC와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CDC가 전 국민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전해졌어요. 참나. CDC가 우리 엄마보다 질병과 관련해서는 더 나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문 닫은 가게, 무더기 해고, 감봉
이곳은 지역 정부의 지침에 따라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고요, 쇼핑몰은 당연히 다 문을 닫았습니다.
코로나만큼 무서운 것은 코로나가 경제에 주는 영향입니다. 사람들이 거의 집에 머물면서 엄청난 수요가 사라졌고 회사들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회사들은 직원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깎았어요. 해고되거나 임금이 줄어든 직원들은 다시 전체 경제의 수요를 줄일 겁니다. 미국 전체 경체 활동에서 소비는 70%가량을 차지합니다.
처음에는 가까운 2008년 금융위기를 떠올리던 전문가들은 이제 1930년대 대공황을 상기합니다. 지지난 주 미국에서 새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의 수는 300만 명을 넘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통상 20만 건 정도를 기록했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의 폭증은 50년간 최저 수준에 머물렀던 실업률 급등을 예고합니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32%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약 4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거예요.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7만5000달러(부부 합산 15만 달러) 미만 세금 보고를 한 사람들에게 개인 한 명당 1200달러(146만원), 아이 500달러를 주기로 했어요. 해당하는 가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3400달러를 받게 되는 셈이니 아무런 대가 없이 받는 돈으로 생각하면 적지 않죠.
그런데 딱 보기에 이렇게나 화끈한 부양책이 얼마나 갈까요? 정부가 계속해서 돈을 줄 수는 없을 텐데, 당장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이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특히 생활비가 많이 드는 뉴욕시 인근 도시에 거주하는 어떤 사람은 1200달러라는 돈으로는 한 달 월세도 내지 못해요.
(아직은)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불안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출근하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아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총은 '권리', 의료는 '특권'…나에겐 이상한 나라
국민건강보험으로 평생 보장받던 제가 이곳에서 목격한 미국의 의료 체계는 정말 최악입니다. 의료 전문가는 아니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좋아서 과잉 진료 논란이 있어도 질병의 예방이나 악화 방지에 이곳보다 더 유리한 환경 같아요.
평상시에도 이곳에서는 아기가 고열이 나지 않는 이상 병원에서 진료해주지 않습니다. 진료하더라도 타이레놀이나 모트린(이부프로펜 계열 해열제)을 처방해줄 뿐이에요.
게다가 느립니다.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진료는 받을 수 있었지만, 진단을 받는 데는 며칠이 걸렸어요. 진단이 나올 무렵 아이는 병이 나았고요. 그럴 거면 왜 진단을 한 건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사태에 매우 취약합니다. 초기에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도 검사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어요. 정말 확실한 증상이 있어야만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이 가능하거나 비용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나름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도 설치되고 꽤 활발하게 진단이 이뤄지고 있긴 합니다.
높은 의료비용은 많은 사람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역선택을 강요합니다. 저소득층이라면 메디케이드와 같은 정부 혜택을 받아 무료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지만, 저소득층이 아닌 경우 의료비 부담은 엄청납니다.
비싼 보험이 있다고 해도 모든 게 커버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보험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커버되는 폭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몸에 이상을 느껴도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정말 내가 아프다고 확신할 때까지 웬만하면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이래서 병을 키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기본적으로 병원에서 청구되는 비용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입니다. 보험이 없다고 해도 접근 가능한 범위에서 비용이 책정돼야 하는데 미국 병원들은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합니다.
잠시 한국에 나가 건강보험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을 이용한 적이 있어요. 제 진료비는 30만원 가량이 나왔죠. 보험이 적용됐다면 훨씬 쌌겠지만 못 낼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곳의 병원비는 차원이 다릅니다. 응급실에 가서 아무런 처치도 받지 못하고 의사도 보지 못했는데 "괜찮다"라는 소리를 듣고 청구된 비용이 1200달러였어요. 작은 치료라도 받으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집에 반강제로 갇혀 있는 사람들은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궁금해합니다. 적어도 한 달, 길게는 여름까지 이 끔찍하고 지루한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조금 더 일찍 대응에 나섰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쩌겠어요. 상황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일부 책임없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역선택을 강요하는 의료시스템은 미국이 이 같은 쇼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여건이고요, 갑자기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한 가지 바라자면, 아직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이지 않은, 코로나로 나는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사태로 엄청난 희생이 치러진 만큼 이곳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한번,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