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by 로라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연다.

먹지 못하고 배달해서 쌓아둔 음식들이 뒤지니 제법 나온다.

먹을 것이 마땅하지 않은 날 나는 또 '내일 이러 이런 음식을 해 먹어야지' 하면서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야채와 고기, 두부 잡다한 식재료를 새벽배송받는다.


그런데 또 아뿔싸~

음식을 쌓아둔 날은 또 외롭던 나날 중 모임이 생기고 약속이 있어서 재료들을 묵히게 되는 일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네.

급하게 버리지 않기 위해서 음식을 하곤 혼자서 먹어치우기 버거워서 어쩔 수 없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해야 할 때는 마음 저 구석에서 왠지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곤 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물들처럼, 식재료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소비자 유통기간이거나 유효기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는 식재료와 달리 인간관계는 오랠수록 그 깊이를 의미 있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 추억을 공유했다고 해서 꼭 그 인간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자꾸 머뭇거리고 되돌아보게 된다.

니체나 쇼펜하우어, 공자, 맹자 말씀이 아니더라도 무수한 위대한 철학자들의 책에도 굳이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이 나이가 들수록 부질없다는 명언은 충분히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인간관계에도 오래된 인연도 좋으나 유효기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슈퍼에 가서 우유하나, 두부하나를 들면서도 유효기간을 몇 번을 확인한다.

들었다 놨다, 유효성분을 읽었다 비교했다가 어느 성분이 들어있으면 그 음식을 피하게 되는 등 깐깐하기 짝이 없다.



모아진 손은 언제든 풀 수 있는 것.






아~주 가끔 지금 학창 시절 나의 단짝이었던 친구와 지금도 연락하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직장에서 매일 점심을 함께 먹던 동료와는 어떤지 머릿속을 헤집어 본다.

나랑 맥주잔을 기울이던 직장에서의 후배들은 어디쯤 머물까 혼자 카톡을 보기도 하지만

모두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이고 이것이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이구나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20대의 친구들은 커피와 크래커 한쪽을 두고서 꿈과 열정을 이야기하고 남자친구, 결혼 등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나이가 들면 같이 방을 얻어서 함께 살자는 개소리로 키득거렸다.


30대에는 육아와 시집스트레스, 직장스트레스로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 온기를 손으로 느끼면서 잠시 서서도 시간을 화살같이 보내버릴 정도로 함께 수다를 떨었다.


40대에는 늙어감에 대한,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중년의 위기로 느끼면서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친구들의 위로가 정말 너무 감사했다.


50대에는 부모님 돌봄과 자녀독립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 울고 웃으며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기였다.


그 시기들을 뒤로하고 이제 공통으로 이야기할 주제가 없다. 우리 나이에는 꿈은 이미 포기했거나 이루었거나, 자녀들은 독립했고 직장에서도 은퇴했으니 남은 것은 건강이야기와 옛날이야기 어쩌면 죽음에 대한 놀라운 불안뿐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유효기간 아닐까?

새롭지 않은 같은 이야기들을 수십 번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가 또 예전 이야기를 하면 다 알면서 듣기도 하거니와 마음속으로는 '그 레퍼토리 29번 더 들으면 100번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들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 모든 반복적 이야기는 "우리가 40년 지기야" "평생친구"라는 말로 유효기간을 억지로 연장하고자 하는 방패막이 막아가면서 억지로 추억을 회생하는 일일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은 "친구"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가족"은 유통기간 지났다고 가져다 버릴 수도 없는 밀착된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마음과 노력이 없으니 똑같은 옛날이야기, 너희들 키울 때 힘든 이야기 등등 직장 있을 때 잘 나간 이야기, 엄마친구 아이 결혼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으니.

그 말을 늘 들어주어야 하는 아이들은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것처럼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각자 떠나자~ 각자의 인연에 따라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20대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결혼하거나 다른 길을 가면서 멀어졌고

30대 함께 했던 동료들은 승진하면서 연락이 끊겼으며

40대 툭 터놓고 수다를 떨던 이웃은 이사를 가면서 어느새 멀어졌으며

50대 서로 동병상련하던 친구들은 자식들 문제도 서로 바빠지고 비교하고 하면서 정리가 되었다.

이제는 친구 없이 그 에너지 외로움을 가족에게 쏟아 붙들어 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모든 늙어가는 것에 어김없이 적용되는 원리 말이다.





서로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공통점이 사라지고 만날 이유도 줄어들고 결국 좋은 추억만 남기고 헤어질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억지로 이어가기보다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기 좋은 인연 아니겠는가?

신선한 유통기간 일 때 맛있고 고소한 입맛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아마 속으로 '엄마, 그 이야기 13번만 더 들으면 100번이거든~'이러고 있을지도......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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