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로 죄를 짓고 있는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반드시 무엇이 고이고 쌓이는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늘 치열한 것에 익숙해서인지 한가하면 살짝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안절부절인 것 같습니다.
가끔 멍 때리고
입도 봉하고
눈도 감고 이리 살아야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리 서두르고 사는지
며칠째 컴퓨터옆에 두고 한두 장 펼치다 덮은 책을 읽어봅니다.
요즘 너무 바람처럼 돌아다니는 것만 좋아하고
맛있는 것만 먹고 다녀 살만 늘고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와 모임을 하고나면 돌아오는 길은 늘 공허함이 생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만나서 그다지 영양가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타인의 험담을 넘어서 연예인이야기로 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확실한 의구심과 또한 이것은 헤어질 시간이다라는 싸인이기도 하며 에너지가 쏙 빠져나가서 지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허전하고 공허하며 내 정신이 빈곤한 듯하여 책 좀 읽었더니
꼭 나를 나무라는 글이 저를 부끄럽게 하네요.
조신히 옮겨보면서 가슴에 새겨봅니다.
말의 무덤, 언총 -이기주-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필요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이른바 다언증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군에 있는 언총이라는 '말 무덤'을 떠올리고 한다. 달리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을 파묻는 고분이다.(중략)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기에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해봅니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보면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오히려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면 사는 건 아닌지....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아가는 꽃들이 너무 뽐내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지도 모른다.>
내 입으로 지은 죄가 하도 많아서
말의 무덤을 찾아갈 수는 없고 길가에 화려하게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는
길가에 아롱이로 어울리는 꽃밭에다가 급한 김에 내 말을 묻어버렸습니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오늘도 한 다발 묻었지만
어느새 또 한가득 입으로 죄를 짓고 사니 이 입을 영원히 봉하려면 죽은 이가 되는 길 뿐인데 그럴 순 없고 이미 뱉고 난 뒤 늘 이불킥을 해야 하니 참 한심합니다.
늘 입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다 보면 종종 "침묵은 금"이 아님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침묵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유머와 화법은 오히려 "다이아몬드"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자기 합리화일까요?
적절한 유머와 화법은 명품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오직 내 마음과 내 입으로만 만들어내는 언어의 명품이니 돈도 들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매일 입에서 명주실을 감아올리는 누에고치처럼
내 입에서도 다이아몬드 같은 언어를 뱉어낼 수 있길......
내 입으로 지은 죄가 하도 많아서 괜스레 더 쭈뼛해지는 하루 같습니다.
내 언어의 총량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입을 봉하고 살 수 없다면 타인과 잘 버무려지는 적절한 유머와 배려있는 화법이라도 구사할 능력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래야 내입으로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흐리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