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돋는다, 돋아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피천득 수필집

by 로라

이 세상 어느 엄마 없이 다 그렇겠지만,

우리 엄마는 내 인생에서 여러 이정표를 주신 분입니다.

항상 지나칠만큼 깔끔한 친정집.....

엄마 혼자 사신지 몇 년이 지났어도 언제나 아버지와 같이 사시는 것 같이 그렇게 사진이며, 물건들이 오롯이 잘 정리 정돈 되어있었습니다.


항상 갖다 버리는 저와 달리 엄마는 늘 이리 저리 쟁여놓고 챙겨놓습니다.

그것도 너무도 깔끔하고 먼지 한톨없게 해놓지요.

그 덕분에 가끔 소중한 추억을 건져올 때도 많았어요.

제가 갖다 버린 그 많은 책들속에서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나의 추억을 돋게 하는 물건으로 살아남아 지금도 가끔 살펴보게 하는 두 권의 책을 엄마 덕분에 건져왔으니까요.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

지금은 추억을 탐방하는 스토리를 파는 골목으로 바뀌었지만

옛날 저는 보수동 책방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누렇게 바랜 낡은 신문지처럼.....그 시절 골목길로 빨려들어가면 해가 꼴딱 지도록 머무르곤 했지요.

참고서를 살까하는 마음보다는 공부에는 큰 뜻이 없었기에

가뭇 책을 사본다거나 대학을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어서 그냥 참고서를 제외한 모든 책들을 만져본 듯합니다.


전 먼 고등학교 등하교길을 주로 걸어다녔습니다.

섬 해안선을 구비구비 돌아서 걸어가면 어느새 땀범벅이 되고 한 시간 정도를 걸어가면 몇 백원의 차비가 남곤 했었지요.

그 돈이 한달 쯤 모이면 전 보수동 헌책방으로 갔었더랬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사기 위해서 책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칼라가 들어있는 약초사전이라든지, 란을 키우는 책이라던지, 국화기르기 같은 것을 유독 좋아했던 저는 비싼 칼라책들은 사지 못하고 늘 교과서에 나오는 저런 책들을 몇 권들고 왔습니다.


중 3학년 연합고사를 마치고 읽어대던 세계문학 전집, 우리나라 수필집, 단편집 먹성좋게 읽어대다보니 고등학교 갈때 몸무게가 10키로 불어있었던 슬픈 사연도 있습니다.

결혼하면서 그 이후로 보수동 책방에서 건져왔던 그 낡은 책들은 버리고 싶은 과거처럼 구질구질하고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몽땅스리 버리고 또 버리고 ......

친정에 가서도 늘 바쁘게 하루밤을 겨우 새고 내 살림 살고 육아하기에 바빠 서둘러 상경하기에 바빴었네요.


어느 날 출장길이 부산으로 잡힌지라 평소하지 않던 짓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하루 먼저 가서 친정 엄마랑 보내면서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급하지도 않고 시간에 쫓기면서 다니지 않아도 되는 하룻 밤을 엄마랑 오손도손 옛이야기 하다가 잘 들어가지 않던 방에 들어갔는데

아뿔싸~

다 버려버렸었는 줄 알았는데 4단 책꽂이에 엄마가 정갈히 꽂아놓은 나머지 책들이 있더군요.

눈물이 핑 돌아서 애써 눈자위를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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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 문고판이네요. 피천득선생님의 수필 책입니다. 그때 무슨 감성으로 저 책을 읽었을까요? 아마 읽어야 하니 교양을 갖추고 싶은 마음에 그냥 읽어댔을 것 같습니다>




제가 고르고 골라서 갖다놓았던 보수동 책방의 찌끄레기 들.

언제 샀는지는 모르나 지적 허영심에 쩔어 있던 시절 마구 잡아들였던 것들중 몇 십권이 남아있더군요.

막심고리키의 어머니

에리히 프롬의 책들, 약초사전 등...

이것 저것 만져보다 짐이 될까 작은 문고판 두개를 먼저 가져오고 엄마보고 책을 버리지 말기를 부탁드리고 왔어요.

책 뒷장을 보니 700원,1500원 정도 ...아마 보수동 책방에서는 300원 정도에 사지 않았을까 싶은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문고판 2권을 가방 속에 끼워왔습니다.

아마도 부피가 작아서 선택되었던 책일것 같아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시꺼먼 책장 넘기면서 끝까지 읽을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깨알같은 글에 눈이 아파 서울오자마자 도서관가서 여자의 일생 책 빌려왔습니다.

17~8세때 읽은 여자의 일생은 저의 머리에 어떤 흔적도 없었지만

그 낡은 책장 앞에 쓰러진 여자의 사진은 오래토록 남아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이 된 후 읽는 여자의 일생이 어떨까?

아마 오늘 밤을 샐듯합니다.

지금은 너무도 오래되어 모파상의 책표지는 이미 다른 그림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 책표지의 오래된 책들은 이미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Andrew Wyeth(1917~2009)라는 미국 작가가 그린 유명한 "Christna's World" 라는 작품입니다. 뉴욕MOMA에 전시되어 있다는 데 진작 저는 MOMA가서도 보지를 못했네요. 아마도 그때는 잘 몰랐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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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기억이 전혀 안나고표지의 가련한 저 여인네의 가는 허리와 비틀린 팔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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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어느 한 쪽인데 책 속에서 추억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낱장이 떨어져 나갈까봐 조심스레 다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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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적힌 가격이 여자의 일생은 700원, 수필은 1500원 크기는 수필책이 훨씬커요>




혼자 떠돌던 무수히 들었다 놨다 했던 그 보수동 책방 아저씨들은 다들 돌아가셨을까요?

아직도 옛날 영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힘이 다하는 그 날까지 책방에 출근을 하시는것일까요?

다시 가보기에는 너무 먼 그 곳

어느 새 "감성 충만"을 최우선하는 젊은이들의 셔터에

낡은 책표지와 아울러 사진 속 감성으로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엄마가 보관해주신 나의 추억품들은 엄마와 함께 하늘로 갔지만

어쩌다 들고 온 낡은 두 권의 포켓문고는 저에게 다시 돌아와 책장에 모셔두었습니다.

다들 추억이 돋는 물건들이 있겠죠?

추억이 마구 소름처럼 돋아서 이 밤에 지껄여봅니다.

마음에 기억되있던 어떤 책들도

책장에 꽂혀져 있던 낡디 낡은 책들도 그냥 물건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젊은 날의 나"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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