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보자기와 무명 보따리

마음은 무명 보따리처럼 넓게, 입은 비단 보자기처럼 우아하게

by 로라

치매가 그리 깊어진 줄은 모셔와서야 알았다.

작은 아이가 대학을 가서 이제 휴~ 한시름 놓은 그 주 남편은 부리나케 시골에 가서 어머니를 모셔왔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감옥 같은 그 고등학생 시절을 마무리하고 이제 8.15 광복절 특사처럼 감옥에서 해방이 되는 기분인데 남편은 이 시기를 마르고 닳도록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연이어 치매 중증이란 판단을 받았다.

어떡할 것인가?

남편과 나는 출근을 하면서 밤에 잠을 주무시지 않고 밤새 돌아다니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어머니의 치매 행동에 걱정과 우울감으로 고민이 깊어졌다.




어머니는 늘 보따리를 싸셨다.

얼마나 힘이 좋으신지 보따리를 쌌다가 풀었다가 머리맡에 올려두고 늘 풀었다 싸기를 수십 번을 했다.

낡은 보따리는 우리 힘으로 풀 수도 없었다.

꽁꽁 싸매진 보따리를 들고 계속 고향으로 가시겠다고 밤새 남편과 실랑이를 했다.

지치지도 않는 이 행동은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도 나날이 지쳐갔다.


어머니의 보따리는 젊은 날의 상징일 것이다.

캐캐묵은 손수건 나부랭이와, 양말, 그리고 통장과 도장

그 속에 있는 것들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 모두였다.

보따리는 그렇게 이것저것

아픈 회한, 첫 아이의 추억, 연지곤지 찍고 얼굴도 모르는 어른이 정해준 남편을 만나는 두려움, 설렘

그런 것들을 다 끌어안고 있는 덩어리이다.


저 많은 회한들과 추억들을 캐리어에 보관할 수는 없다.

명품 가방에도 넣을 수가 없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몽땅 다 끌어안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그냥 모양 없는 넓은 보자기밖에는.




나는 대학원에서 어설픈 상담심리를 전공을 했다.

주경야독 형태이다 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냥 학위나 받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을 따라 학교와 학과에 진학을 했다.

그녀의 입은 마치 누에고치의 입에서 비단실이 나오는 것처럼 술술술 명주실 같은 예쁘고 아름다운 말만 나오는 것이었다.

늘 감탄을 했다.

어찌 저리 예쁘고 고운 말을 술술 할 수 있을까?

어찌 저리 누에고치가 비단 명주실로 변하는 것처럼 언어를 저리 사용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첫 집단 상담 시간에 본인의 이름보다 서로를 호칭할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게 되었다.

첫 시간이었으니 각자의 별명을 짓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교수님께서는 자기의 별명을 지어달라고 우리들에게 청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고 "비단 보자기"라고 지어드렸다.

아름답고 예쁜 것을 감싸는 비단이면서도, 사람들의 힘든 마음 같은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보자기여서 보따리가 아니라 보자기라고 설명을 드렸다.

그것도 '비단 보자기'라고......


그 인연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내가 결혼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오고도 교수님 부부를 뵙기까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날부터 인가 교수님은 계속 전화를 하시면서 똑같은 말을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했다.

우리 아이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대학 진학까지 딱 그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또 말하고 또 말했다.


여러모로 지쳐 있던 나는 교수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나의 비단 보자기 교수님이 치매를 앓고 계시다고 전해 들었다.

마음이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내마음 속의 한때의 우상이시던 '비단보자기'교수님이 무너지는 모습을 차마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늘 보따리를 싸고 계시던 시어머니와 내 마음속 닮고 싶은 비단 보자기 교수님이 그렇게 치매를 앓으셨다.

나도 비단 보자기가 되리라고 다짐을 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집에 이런저런 선물이나 포장 등으로 보자기가 많이 있음을 알았다.

갑자기 그 보자기가 그리 소중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그리 꽁꽁 싸매던 보자기를 버리지 않고 통에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곤란한 물건들을 싸기에는 보자기만 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두터운 겨울 롱패딩조차 보자기에 딱 싸놓으면 안성맞춤이다.

이제는 보자기는 무언가를 쓱 끌어 담아 보관하기에 딱인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싸매던 그 보따리처럼 드레스 룸에 크고 작은 보따리가 선반에 보관되어 있다.


영원히 일어나길 바라지 않지만,

나도 저 보따리 싸서 안고 젊은 날로 퇴행하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따리를 풀고 묶을 때마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보따리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내가 닮고자 했던 비단 보자기 같은 우리 교수님

나도 그녀처럼 죽을 때까지 비단 보자기처럼 살고 싶다고 마음먹어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폭설에 깜짝 놀라 얌전히 자리 잡고 있는 옷 보따리를 풀면서 옛 추억에 푹 쌓이는 밤이다.

창 밖에는 첫 눈 치고 꽤 많은 하얀 눈과 천둥번개 소리가 막 쌓이고 있다.


ps: 느림보 거북이라 힘이 들었는데 어느덧 30회의 글이 다 차서 마무리글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글 쓰고 싶을 때 돌아올께요^^*


<이미지-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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