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똥꼬마니' 아가씨

바담풍이라 말하고 바람풍이라고 듣길 바라다니......

by 로라

어제 퇴근길에 아파트 사이로 난 길에 어느새 가을이 소복이 내려있었다.

아름다운 꽃도 십일이 못 가지만

요즘은 가을이 익기도 전에 단풍도 십일을 못 가는 것 같다.

일부러 예쁜 길에 빠지고 싶어서 길을 돌아 돌아 걸어서 퇴근길을 길게 잡는다.

이제 시간이 충분한 나에게 종종거림 보다는 여유로움이 훨씬 곁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횡단보도 앞에 섰다.

종알 종알 일방적인 이야기 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할머니가 아장아장걷는 손주 손을 잡고 이리로 오시는 것으로 보아 딸인지, 아들인지 육아를 돕느라 '놀이방'에서 어린 손주를 집으로 데려가는 길인 것 같다.


할머니(할머니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좀 어중간한 예쁜 할줌마)가 정말 아직 아기인 손주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무슨 말을 주고받고 혼자 계속하시는 소리다.

나는 그 소리가 왜 이리 듣기 좋은지 길을 다 건널 때 까지 같이 보폭을 줄이면서 귀 기울였다.

걸을 때도 "하나 둘 하나 둘......"

낙엽을 보고도 "우와~ 이쁘지, 노랗네, 빨갛네....."

신호등을 보고도 "무슨 색깔에 건널까?

앗 초록색이다. 다음은 무엇이 나올까?" 등등

끊임없는 저 언어의 자극들은 손주의 뇌를 자극시키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보면서 빨리오라고 하는데 거기에 또 똑같은 옷과 얼굴을 한 아기가 할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었다. ㅎㅎㅎㅎ 아~ 쌍둥이 손주구나.

일 나간 자녀들의 육아를 도와주시는 부부시구나.

쌍둥이니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때인가? 곁에서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것 만으로도 축복이다. 그렇치 못한 경우 "독박육아"니 "독립군 육아"니 하는 용어가 난무한터인데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가의 손만 잡고 있고 꽤 긴 길을 아무말 없이 그냥 걸으셨다.


그 사이에 또 직업병이 도지는 지 '저 아기 담당 관리를 돌아가면서 해얄텐데.....' 이런 오지랖이 발동을 한다.

똑같은 아기를 한 분이 맡으신다면 아마 그 세월의 차이가 낙엽처럼 쌓이고 쌓여 두 손자간에도 제법 날 것이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혼자 걸으면서 내 아이와의 추억이 가을 낙엽길을 온전히 적시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

나는 아이에게 언어 자극을 주고 늘 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쉴 새 없이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시절 잡지를 모아두었다가 아이랑 방 안에 펼쳐놓고 가위로 한없이 자르고 오리고 붙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 것 같이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몰빵을 했었다.

그날도 거실바 닥에 온갖 잡지를 찢어서 널어놓고

아이랑 놀고 있었다.

나는 잡지를 잡고 동그라미도 오리고 삼각형도 오리고 꽃도 만들고 뱅글뱅글 나선형으로 돌려서 잘라 귀에도 걸어주고 그러면서 낮시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을 갚으려는 듯 시간을 보내고 있었었다.

어설픈 가위질과 놀이로 시간을 보내던 중

큰 아이가 자꾸 나에게 "똥꼬마니, 똥꼬마니'하면서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도대체 똥꼬마니를 어떻게 만들어주지 하면서 막 이것저것 오려주었는데 점점 소리가 커지고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 답답한 나도 미칠 지경이었다.

말을 똑바로 해야 알아듣지......

성질이 점점 나기 시작해서 온 거실이 난장판으로 된 상황이 왔고 나는 자꾸 성질이 나서 말을 크게 하고 아이는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울고 "똥.꼬.마.니" 막 이러고 발을 버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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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대로 오리고 자를수 있게 되자 흡족한 표정의 똥꼬마니 아가씨>


그러다 내가 언젠지 모르나 오려가면서 보여주었던 동그라미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미친다, 진짜"

"동그라마"를 오려 달라는 소리였다.

아이는 너무 어리고 내가 주는 말이 전부인데 나는 급하게 이것저것 주절대느라 오리면서 "동그라미" 하고 오렸건만 아이 귀에는 "똥꼬마니"라고 들린 것이다.

어린 손으로 동그라미를 오리려니 안돼서 나보고 오려달라고 한 것인데 나는 또 이해를 못 한 것이다.

그날 기억은 정말 오래도록 남는다.

훈장님이 서당 아이들에게 따라 읽으라 하고 "바담 풍"하고는 바람풍이라고 읽지 않는 아이를 나무라는 그 장면이 딱 그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리 똥꼬마니 아가씨는 자기의 아이에게 엄마처럼 그리고 오리고 말을 끊임없이 해 줄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때보다 더 살기 힘들고 해야 할 것도 더 많으니까 말이다.

전화가 생기고 스마트 폰이 생기고 메일이 있고 무엇보다 카톡으로 대동단결되어서 편지를 쓸 일이 없어도 더 바빠진 것처럼 요즘은 무엇 때문인지 기계가 더 많아지고 3대 이모님이 있고 자동차도 있고 있을수록 더 바쁜 시대이기 때문이다.


20251109_161622.jpg < 볼통통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영원히 내 마음에>

우리 똥꼬마니 아가씨도 자기의 아이에게 예쁘게 머리를 장식해 주고 명품 옷으로 지창하는 것 보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고 책 읽어 주고 교감나누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비록 동그라미를 똥꼬마니로 들리게 발음을 했을지라도......



코로나 시대에 학급에서 수업이 줌으로 이루어질 때 녹음으로 대신한 목소리보다 투박하고 사투리가 섞인 웃겨가면서 수업하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더 잘 집중하던 기억이 분명히 또렷히 남아있다.

예쁜 성우의 목소리로 읽어주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유튜브가 기기가 대신해서 얼마든 책도 읽어주는 시대이지만 엄마, 아빠의 목소리만 한 자극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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