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미리 알았더라면....... 미리 알 수도 없는 일이지만.

by 로라

한껏 육아를 벗어난 가벼운 어깨와 홀가분한 차림의 알록달록 옷을 입을 중년여성들끼리의 여행은 전국 어디를 가도 차고 넘친다.

그뿐인가? 쇼핑, 영화관, 콘서트, 미술관 어디든 중년여성들의 향유가 대세이다.

속이 시원한 자유감을 느끼는 것일지, 아님 속이 문드러지는 느낌의 반발감 때문인지 어디를 가도 파워를 형성하는 것 같다. 콘서트 장을 가도 티켓파워를 가진 중년의 파워는 넘치고 넘쳐서 어느새 팬카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그룹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재력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꾸밀 줄도 아는 부모세대이지만 그들과 마주하고 자녀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춘기 때문에 징글징글하다는 부모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사춘기'는 모든 것에 대적하는 무적의 칼날과 무적의 방패인 것인지

그저 부모들은 '묵묵히 참고 견디면 돌아오더라' 하는 본인의 경험인지 타인의 이야기인지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지지하는 말을을 하염없이 하게 된다.

이럴 때는 늘 법륜스님의 글 한 꼭지를 떠올리게 된다.




법륜스님 책을 맘 편하게 그냥 술술 넘기다 보면

참 어려운 일을 쉽게도 말한다 싶다가도

참 쉬운 말을 더 쉽게 한다 싶기도 하다가도

결혼도 안 한 스님이 어찌 이리 경험치 같은 말을 할까 싶기도 한 것이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고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추상같은 서리 내리는 이야기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론만 빤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어떤 경우의 이야기던지 타인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객관화해주는 상담으로 보는 이도 듣는 이도 마음이 편해진다는 그것이다.


책도 마음이 편해야 눈에 들어오고 읽고 싶은 것

사춘기 자녀로 힘이 들 때는 내 마음이 지옥 같을 때에는 돌아다녀도 허하고, 놀러 가도 퀭하고

이것도 저것도 안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책을 베껴보는 센쓰^^ 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법륜스님이 <엄마수업>이란 책에서 무수히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상담을 자주 하는 나로서는 이 글만큼 콕 찔러주는 글이 없는 것 같아서 자주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게 되는 글이다.

그저 귀하고 귀해서 땅에 닿을세라,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혹여 상처받을세라, 누구보다 귀하게만 키운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시기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면서 부모들은 태풍을 만나 난파할 것 같은 위기를 처음 겪는 것 아닐까?


그런 부모들에게 위로가 되고 앞으로 사춘기라는 무서운 적을 마주하게 될 부모들에게 미리 읽어보면 항상 도움을 주는 글귀라 생각해서 인지 바이블 같은 의미로 존재하는 책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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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옛날에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 때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해서 건강하지 못하거나 배울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 흠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아주 잘 먹여서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고, 공부도 많이 시켜서 아이들이 아주 똑똑해요.

그러나 문제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어린애 짓을 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부모가 아이의 자립 기회를 막고 아이 대신 다 해준 데서 비롯된 겁니다. 부모는 사랑을 준다고 한 것인데 그게 오히려 아이를 망친 거예요. 아이를 나쁘게 키우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이의 성질을 몰라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른 데서 비롯된 거예요.


사춘기 아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어릴 때와 달리 감정과 생각이 자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한생을 회의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안 하기도 하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해서 눈뜨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해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따라 배우기만 해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 가라면 가로 오라면 오고 말을 잘 들었는데, 사춘기가 되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걸어가면서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주체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부모가 볼 때는 아이가 갑자기 말 안 듣고 반항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이거 뜨겁다, 만지지 마라" 하면 안 만졌는데 이제는 부모가 "뜨겁다, 만지지 마라"해도 아이는 손으로 살짝 만져 봅니다. 그러고는 "앗, 뜨거워"하면서 경험을 하는 거예요. 전에는 뜨거운지 안 뜨거운지 확신을 못했는데, 이제는 손을 대보면서 '아, 저것은 뜨거운 거구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중략)




이럴 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켜봐 주는 겁니다.

넘어지고 자빠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거예요. 이 시기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아기 성숙해지는 때이니까 안타까워도 기다려 줘야 합니다. 지켜봐 주는 것이 마치 부모 노릇을 안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마음이 불안할 수도 있고 마음도 아플 거예요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이때 지켜봐 주지 않고 간섭하며 아이는 결코 홀로 서지 못합니다. (중략)


어릴 때 아이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며 따뜻하게 돌봐주느라 힘들었으니 이제는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 돼요. 그러며 부모도 편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좋은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펴 주던 게 습관이 되어서 애가 컸는데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사랑밖에 할 줄 모릅니다. 많은 부모가 빠지는 함정이에요. (중략)


그런데 요즘은 혼자 서야 할 시기에 부모가 감싸 버리니까 아이들이 몸만 컸지 여전히 어린애예요. 그래서 대학 가는 것도 혼자 선택하지 못해 부모가 선택해 주고, 결혼도 부모가 짝 맞춰 주고, 집도 사주고, 직장도 보모가 여기저기 알아봐서 구해주고, 애 낳으면 애 키우는 것도 부모가 해주고, 이혼하면 손자도 데려와서 키워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안 하고 계속 부모 밑에서 사는 자식을 돌보든지 심지어 결혼을 해도 부모가 돌봐주든지 합니다. (중략)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며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면 아이는 반발해서 튕겨나가 버립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스스로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는 다만 지켜보면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에요.

자식이 다 컸는데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누르는 것은 집착이에요. 어려서 돌봐 줘야 할 때 돌보지 않으면 그것이 병이 되고, 다 큰 후에 자꾸 간섭을 하면 억압심리가 생겨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에요. 어떤 일이든 지켜보다가 세 번, 네 번 문제가 반복되면 그때 주의를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시행착오, 즉 실패한 경험을 갖게 하고 그 과정에서 무너가 자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해요.




이 글들을 몇 번 베껴서 그대로 써보고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 둘은 무사히 '사춘기'라는 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부모의 손을 떠나 허우적허우적 헤엄을 쳐서 이제 자신이 기준이 되는 선착장으로 건너갔으니 이 정도만 해도 법륜스님의 일침에 나는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서 물을 털고 강을 거슬러 올라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돌아보면서 힘차게 뛰어갈 차례이다.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착실하게 공부만 하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결혼은 왜 안 하냐고 한다는 젊은이들의 한탄이 생각이 난다. 부모의 말대로 공부만 하고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알고 죽도록 자기감정을 죽인 자녀들에 거의 사기급의 발언이다.


인생의 황금기랄 수 있는 시기에 맘껏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고, 울어보고, 좌절해 보고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주고 싶다. 등을 밀어주진 못하더라도 앞을 가로막는 부모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자식 앞에 있는 덤불을 깎아주진 못할 망정 발목을 잡아채는 부모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래도 조금 변명을 해본다면

내가 사춘기를 인내와 사랑으로 지켜보았으니

엄마의 갱년기를 좀 인내해 주길 바라면 안 되겠니?

엄마의 노년기를 사랑으로 지켜봐 주길 바라면 과하겠니?

이런 생각하면 법륜스님이 노하시겠지?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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