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신 신고 밤길 가는 팔자

러닝화 신고 대낮에 놀아보세~

by 로라

요즘은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한지라

제가 새댁이었을 때 랑 비교하면 진짜 진짜 많이 달라졌네요.

새댁을 지나 이제는 헌 댁이 아니라 아주 구댁이 되었는데도 마음속 트라우마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늬만 종손인 집의 맏며느리예요. 그 네임만으로도 심장이 답답함을 참 많이 느꼈었네요.

나는 언제 이 일을 벗어나보나 하는 그 느낌요.

그 절정은 점점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많아지면서 명절 연휴를 자연스레 "휴식을 취하는" 명절로 인식되고, 그런 날 해외여행이다 가족여행이다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울컥할 때도 있었어요.

남편이 장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제사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기에 영원히 탈출할 수 없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끝이 없다는 마음에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딸만 둘이 예요.

아들을 낳지 못한 장남며느리로서 젊을 때는 마음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결혼하면 안 되는 첫 조건이 '장남'은 안된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요즘은 하나 아니면 둘이라도 장남은 장남, 막내는 막내로 칭하니까요.

그러나 보기 좋게 아이러니하게도

큰 딸은 외동아들과

둘째 딸은 아들 두명집의 큰 아들에게 인연이 이어졌으니 저의 바람은 안드로 메다로 다 흩어졌고

대신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명절의 제사는 훌러덩 벗어던지게 되었습니다.




이웃들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들 가진 엄마는 얼마나 시어머니가 눈치 보이는지 열심히 토로하고

며느리들에게 밉게 보이면 손자까지도 볼 수 없는 형벌에 처해진다고 하면서 며느님 비위맞추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저는 웃어넘기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너무도 까마득한 밤하늘의 유성 같은 이야기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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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어머니가 저에게 하신 말씀 중에

"내 팔자가 비단신 신고 밤길 걸어가는 팔자"라서 외롭다고 하셨네요. 정말 화가 나서 하신 말씀인데 저는 섭섭하기만 했습니다. 그 말이 나온 연유는 전화를 자주 안 한다는 끝에 나온 말인데 저는 일주일마다 전화를 드리는 것이 하나의 의무인 것 같이 힘들었습니다.

그 전화를 드리고 나면 일주일간의 미션이 끝난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다가 다시 일주일이 지나갈 때쯤 되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했거든요.

그래서 남편보고 어머니께 전화 좀 드리라고 했더니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전화 끊기를 수십 번... 안 해버리네요. ㅠㅠㅠ어쩌란 말인지? 이 사태를 우찌 수습할꼬? 그 여파는 꼬박 저에게 오니까요.

그리고 들은 말은 "비단신 신고 밤길 걸어가는 팔자"라서 라는 말을 들었고

이렇게 오랜 세월에 지나도 저는 이 말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섭섭해서 당신이 참고 참다가 뱉은 말이었지만 저는 이제 어머니가 삐쳐도 화가 나도 전 더 이상 그리 두렵지 않은데 당신의 마음에는 '화'만 쌓여가니 당신 스스로를 자꾸 외롭게 만드신다 싶어서요.

저야 며느리지만 어머니는 딸과의 관계도 웬만치가 않아서 시누이들이 엄마를 안 보려고 하는데 만일 갈수록 저러면 우리 어머니는 정말 외로우시겠다.




그런데 제가 이제 시어머니 나이가 되어보니

그리고 변한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타까웁네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 세대는 며느리에게 큰 소리라도 쳤지만 지금은 시어머니가 눈치를 본다니 사실인지, 아닌지!!!!!

친구들 중 한 명이 그런 말 합니다.

"그래도 밤길에 맨발보다 낫지 않아? 밤길 얼음얼은 길에 맨발로 걷는 사람도 너무 많으니까"

앗 그러네요. 그랬더니 대낮에 짚신신고 가는 것보다 밤길에 맨발보다 비단신 신고 밤길이면 그래도 괜찮은 팔자라고.

어떤 친구는 밤에 신을 비단신 아니라 고무신도 없대요.


세월이 지나 보니

요즘 우리가 말하는 젊은이들이 젊은 날 나와 남편의 모습일 텐데 우리도 섭섭한 마음이야 종종 생기겠지요?

먼저 며느리 본 친구말이 왜 섭섭한 것이 없겠냐고 합니다.

왜 답답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그런데 그런 표현하면 우리만 더 서럽다고 해요. 우리 젊은 시절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것 뻔한 것이니 '그저 예쁘다, 그저 잘한다, 그저 고생한다.......'이렇게 해야 내가 섭섭하지 않다고 하네요. 친구의 현명한 말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다 같이 다짐했습니다.

비단신 신고 밤길에 섭섭해하지 말고

멋진 러닝화 신고 낮길에 달리고 걷고 즐겁게 살고 섭섭해하지 않기로요.


우리 친정엄마, 시어머니 모두 천국에서 대낮에 예쁜 비단신 신고 다니셔요.

한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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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Pixabay>와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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