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라는 펀드
이사를 하면서 벽지도 새로하고 물건들도 새것으로 많이 교체를 하게 되었어요. 3대 이모님 식기세척기,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 등등 새로운 것이 점점 많아지고 좋아지지만 그래도 살림살이는 내가 늘 쓰던 묵은 것이 손에 익어 있어 그런지 자꾸 옛 것을 찾게 되고 쉬 버리지 못하겠어요.
저에게는 '자식'이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자식이 성인이 되면 완전한 독립체가 되어야 한다느니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다느니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느니 그런 조언들을 남에게 제일 쉽게 했었네요.
막상 내가 그 태풍 속에 들어가니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내가 그동안 가졌던 신념이나 조언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하는 것들이 되었어요.
많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아마 부모라는 강을 건너신 분들은 다 크고 작게 저 같은 느낌들을 가지시겠지요.
경험의 강도와 배신의 깊이만 다르지 허우적거리는 것은 같으니까요.
아니 배신의 깊이라고 하면 안 되겠네요. 애초에 그들은 우리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놓아준 것이니까요.
항상 종종 거리며 바쁘게 살다 보니
일의 중요도를 순서대로 일의 순서를 정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다 마무리해야지 하고 벼루고 벼루 었는데 막상 시간이 한가로우니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란 것이 소몰이하듯 바빠야 사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밥 먹고 물안 먹은 것처럼 정신없어야 뜻이 있는 것인지 참 헛갈리는 아침입니다.
새해가 귀신같이 찾아왔다가
귀신같이 물러가길 벌써 봄이 흐드러지고
그냥 밥 먹고 물먹고 밥 먹고 물먹고 이런 일상이 다 인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이 문제로 고민이 엄청 많았더랬습니다.
부모가 활시위라면 아이가 화살인 텐데 부모가 얼마나 팽팽히 당겨주어야 화살이 멀리 날아갈 것인가?
화살이란 것이 너무 위로 올려도 좋지 않고
너무 아래로 내려도 안되고
적절히 목표치를 뚫을 수 있는 높이의 조준이 딱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자리는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상은 높으면 현실이 안되고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먼 훗날 후회할 것 같고......
남편과 모닝 커피 마시다가 한 말이 불쑥 생각이 나서 한가로움을 웃음으로 이겨봅니다.
자식은 "영원한 불량 부채"라나요
채무도 이런 채무가 없습니다. 나는 평생 주기만 했는데 원금에 이자는커녕 원금 훼손이 나도 다 감당해야 하니 그것이 바로 불량 부채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상폐가 될 수도 있는 아주 불량한 펀드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큰 것 바라지 않지 않나요?
그냥 정기적금처럼 원금보장 정도에 약간의 수익률이라는 소박한 지지선을 깔고 있는데
자녀들이 자라 갈수록 원금보장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생각이 됩니다.
한참 웃으면서도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이리 적나라하게 비유를 잘할 수 있을 가 생각이 듭니다.
중1에 입학시킬 때 다 자란 것 같은 교복 입은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이제 훌쩍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니 기뻐해야 할지.. 불확실한 미래에 던져짐을 슬퍼해야 할지... 알쏭달쏭합니다.
다들 자식문제로 고민이 많으실 듯합니다.
지인의 친구 아이가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다는(회복이 힘든) 소식을 듣고 그저 살아있음이 다행이다 했던 그 마음 손바닥 뒤집듯이 더 많은 것 생각하고 요구하게 되니 자식을 향한 우리의 무모한 욕심이 한없고 부질없다 싶으면서도 이 질긴 욕망은 끝이 없는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뒤통수만 째리 봅니다.
건강만 하라 싶다가도
아이들이 던져질 미래를 생각하면
거기다가 부모가 당겨준 만큼 화살이 나간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소리를 접하면 왠지 넉넉하게 지원 못하는 부모로서 죄인 같고....
그저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 따라 잘 날아가서 토질 좋은 곳에 정착하기만 바라봅니다.
자식은 영원은 불량부채라는 말은 정말 생각할수록 일리가 있는 말인것 같아요.
한 덩어리도 아니고 어깨 양쪽에 두 덩어리는 기본이니 아마도 평생 따라다닐 부채가 두렵습니다.
한가로움도 어색한지 오랜만에 햇살도 느리작 거리면서 거실을 비추는데
온몸에 햇살이 케첩처럼 붉그락 물이듭니다.
뒹굴뒹굴 구르면서
내가 들은 이 자식펀드는
불량부채가 될 것인가?
우량주가 될 것인가?
원금보장 은행 예금이 제일 그리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