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아 보기가 얼마만인가 싶네요.
어제오늘 종잡을 수 없는 비와 바람 때문에 한없이 옷깃을 여미고 기침을 콜록 이었지만
그 뒤끝으로 가녀린 바람 끝을 잡고
봄을 따라 기대하는 여름이 올지 알고 있었기에 참아낼 수 있었어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버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전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니 정리할 수도 없이 켜켜이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절대 쌓아놓고 살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더랬습니다. 엄마가 떠난 장롱에는 한 번도 입어보지도 않은 우리들이 사준 옷이라든지
유통기한이 지나도록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이라든지
구불구불 글씨로 작성이 된 온갖 내용의 낡은 수첩이라든지
냉장고와 냉동실은 두서너 달은 너끈히 먹고 살만큼 많은 음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내 흔적과 자취는 자식들이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살아온 조각들은 내가 모두 정리하고 미니멀하게 살 거라고 맹세를 하고 짐들을 많이 줄였어요.
그런데 많이 줄여도 또 챙겨놓고 또 구겨 넣고 했었나 봐요. 그리 버렸는데도
가난한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무엇이 없으면 한없이 불안해지는 마음을 그대로 받았나 봅니다.
매일매일 버릴 것이 얼마나 많고 해마다 그대로 옮겨둔 오래된 cd, 앨범 등등 버려도 끝없이 나오니까요.
그러다가 몇 해 후 시어머니 가시면서 유품 정리해 주시는 분들에게 맡겼더랬습니다.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오랜 요양원 생활로 인해 짐들은 더 이상 수습이 불가했어요.
아쉬운 마음에 남편의 유년시절과 청장년 시절 오래도록 추억이 담긴 낡은 집을
남편과 마지막 들러보러 갔어요.
하필이면 비가 보슬보슬 오는데 이미 막 철거한 물품들이 마당 한가운데 다 버려져 쌓여있었네요.
그중 도저히 그냥 두고 나올 수 없는
남편과 학사모를 쓰신 어머니가 웃고 있는 낡디 낡은 사진과 딸 백일사진 등등 한때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추억들이 바닥에 내팽겨져 빗물에 젖어있었습니다.
남편이 소중히 챙겨서 집에 가져와 말리고 있으나 또 언제 어디서 굴러갈지도 모를 액자들이네요.
나에게 이토록 소중했던 조각들이 내팽개쳐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가슴 한편에 잔잔한 금이 오랫동안 가시질 않았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두 아이의 성장기와 흔적들을 모두 모아서 마지막 교복까지 각각의 큰 박스에 넣어서
"**의 보물상자" 타이틀을 붙이고 보관해 두었습니다. 무겁고 큰 상자는 어딜 가도 들고 다녔어요.
이번에 큰 딸이 신혼여행 가는 길에 집에 일주일 들렀다 갈 때 박스를 아이에게 보라고 주었는데
막 감탄하고 넘겨보고 사진 보고 하더니
사진 몇 장 챙겨가고 끝이었답니다.
아하~그렇지
추억의 잔재와 흔적들은 나의 추억이지 아이의 추억이 아니구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이제 딸들은 자기 자식과의 추억을 쌓고 모으고 하는 거다.
두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그리 다짐을 했건만 부모로서 나는 이미 똑같은 흐름을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진짜 시작된 정리가 몇 날 며칠 끝도 없습니다.
정리하면서 버리다 보면
다시 읽고 추억에 잠기고
그리고 또 몇 가지는 챙겨두었다가
또 버렸다가......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앨범과 사진들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 상장파일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는데 버리다가 정말 이 두장의 편지는 버리지 못하고 또 들고 있습니다.
왜? 그때 저런 편지를 썼을까?
이기주의자 엄마는 우리 큰 아이에게 언제 용서를 받기는 했을까?
아빠에게 글씨체를 고치라고 한 큰 딸의 편지를 읽었을 때 아빠는 어땠을까?
가만히 돌이켜보면 아직 큰 아이도 어린아이인데 공부하느라 힘들다는 이유로 작은 아이의 일까지 맡겼던 것 같아요. 화가 나서 혼을 내고 아이는 울고 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엄마에게 화해의 표현을 했으나 너무 화가 난 제가 아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요.
잠든 후 아마도 제가 일기장을 본 거로 기억하는데
자기도 너무 힘든데 몰라주는 엄마를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더라고요.
아마 그 일기를 본 후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이미 너무도 오래전 일이지만 눈물자국이 남아있던걸요.
왜 그 시절 그리 힘들게 보냈던지
그깟 나의 공부가 뭐라고 아이를 힘들게 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그 당시 어렸던 큰 딸에게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리고 이제 이 편지는 눈으로 찍고 마음에 묻어두고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깔끔히 정리하느라 버렸던 더미에서 두 장만 고이 꺼내서 다시 읽고 가슴에 묻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