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켜있던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나다.
간절히 생각해 보던 어떤 장면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없고
언제 돌아가시나
어서 가셔야 엄마가 살 텐데 이런 생각만으로 병상에서 20여 년을 보내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큰 굴레였었거든요.
죄책감이랄까? 한번 뵙고 싶었지요. 꿈에서요.
아버지에게 늘 어렵고 힘들었던 둘째 딸에게 어떤 말을 하실지 물어보고 싶고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늘 궁금했거든요.
꿈에서라도 한 번 뵙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러한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요.
60이 되던 해 뇌출혈로 쓰러진 후 아버지의 친구들과 동네 모임 아저씨들은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 아버지를 병문안 왔더랬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침대에 누여두고 병문안 오셨던 모든 지인들이 다 돌아가실 만큼 아버지의 침대 생활은 오래오래 이어졌습니다.
나에게 어떤 그리움도 아쉬움도 주지 못하고 그저 생물학적 아버지 같은 추억뿐인 저는 어릴 때부터 규칙적으로 꾸는 악몽이 있었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꿈속에서 뱀똬리 같은 길에서 나를 잡으러 오고
어린 나는,
사춘기 나는,
직장인인 나는,
결혼해서 엄마 된 나는
항상 똑같이 도망가고 또 나를 잡으러 오는 아버지와 사투를 벌이다가 아주 물에 젖은 빨래가 되어 꿈에서 깨어나곤 했었지요.
그 꿈은 어떻게 해야 꾸지 않을 수 있을지 풀리지 않는 실타래였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겨울 강원도 깊은 산골로 출장을 갔었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기도 하는 새벽이 있는 그런 깊은 산골에서 15일간의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들어갔어요.
가슴에 멍울이 잡혀서 병원진료 중이고 검사의 결과가 바로 출장이 끝나는 그 주에 있었으므로 마음이 천 갈래만 갈래였어요. 지금 일을 하러 갈 때가 아니나, 돌덩이를 안고 집에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일에 몰두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나 봐요.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일하는 단순하기 그지없고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점점 조용해져 가고 바깥 힘든 일에 마음이 쓰이지 않게 되었던 어느 날 새벽꿈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꿈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낯설고 어색한 웃음에 겹쳐서
크림색 단아한 한복 위에 예쁘디예쁜 주홍색 붉은빛 도는 조끼와 한복바지를 입고
은빛색 머리를 정갈히 한채
아주 밝은 빛으로 저를 보고 계속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뭇 부끄러워하는 눈빛을 저에게 보내시면서 살짝살짝 웃으면서 페이드 아웃되듯이 멀리 사라졌어요. 평생 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그 장면이 그렇게 어색하면서도 선명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아름답지 못한 기억들은 서걱서걱 씹어서 넘기는 얼은 무처럼 목이 꺼억 매이는 그런 어색함처럼 이상했지만 아버지를 바라보고 저도 웃고 있었습니다.
제법 시간이 갔을까요? 단아한 차림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아버지의 미소가 흐려지면서
저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한참을 멍하게 잠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일까?'
정신을 차려서 일어나 깊은 산속에서의 첫새벽을 맞이하고 거실밖으로 나와 커튼을 확~ 열어젖혔습니다. 창밖이라곤 기다란 나무병정들이 줄 서 서있는 깊은 산속
새벽 동 트기 전 줄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의 색깔은 천둥이 치기 전 짙은 먹색같은 청푸른 빛이었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 줄기 사이로 소복히 쌓인 눈은 경외스러운 신비감 그 자체였어요.
커튼바깥으로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있는 새벽을 그렇게 맞이했습니다.
멍하니 숲을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웃음이
'나에게 모든 일은 잘될 것이다..... 아무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저에게 그렇게 알려주고 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래.......
아버지는 늘 꿈속에서 저를 쫓아오고
숨어도 숨어도 괴물같이 나를 찾아내는 아버지와의 추격전으로 밤 잠을 설치고 했지만
좁은 섬바닥... 늘 쫓고 쫓기던 아버지의 꿈은 똑같은 영화 필름처럼 지지직 판박이처럼 돌아갈 뿐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깊은 산속 첫눈 속에서 아버지와 불현듯 처음으로 웃으면서 마주 바라봤네요.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기만 했지만 백 마디를 나눈 것보다 더 쉽게
얽힌 실타래의 한 부분을 찾아낸 것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녹아 스르르 풀렸습니다.
그 후 다시는 아버지를 꿈속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짐덩이 같았던 투병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하늘로 돌아가신 후 10여 년이 지난 후
떠나보내고도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아버지 얼굴이
혼자 잠든 깊은 산속의 숙소에서 마주하게 되었거든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 한번 꿈에라도 보고 싶어도 결코 나타나지 않던 그분이
한 해를 넘기기 전 조용히 저에게 왔다 가셨습니다.
이 생에 태어나게 해 주었지만, 존경스럽지 않던 아버지
기억에 아름답지 않던 아버지가 드디어 못된 둘째 딸 꿈에 주황색 한복 곱게 차려입고 나타나셔서
온화한 미소 보여주시고 간 후 저는 몇 날 며칠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꿈속에서 만나면 막 따져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승과 현생에서 서로 마주한 날 저는 한마디도 묻지 못했어요.
그냥 어색한 미소에서 환한 미소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리고 당신이 지켜주셨기 때문인지
건강에 대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했어요.
아버지의 미소는 저에게
'그래 그래...... 힘든 세상이지만 살아갈 만 해.
부족했던 아비였지만 하늘나라에서 너를 지켜보마.
그리고 나는 잘 있다.
아비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너 한 몸 행복해라'
'그래 그래...... 세상은 매우 불공평하지만 세월은 공평하다는 그 말......'
긴 시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내려놓는 터닝포인트였어요.
그래도 한 가지 아쉬움은 있습니다.
아버지도 다른 자식에 비해 어렵고 고집 셌던 둘째 딸에게 어떤 감정들을 느끼고 사셨는지 얼굴이 흐려지기 전에 한번 물어나 볼 것을 둘이 그냥 마주 보면서 살짝 웃으면서 그렇게 보낸 것
그것이 정말로 아쉬워요.
살면서 다시 한 번 마주 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정말 물어보리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