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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린 Sep 29. 2024

모두가 기억할 우리 학교의 재스퍼

우리 큰아이가 1학년이었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교 학부모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의 내용은

같은 학교 5학년 재스퍼가 방학중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부고였다.


학교에서는 고학년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

아이들에게 재스퍼 소식을 전했으며,  

아이들이 혹시라도 받을 정신적 충격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저학년 아이들은 각 가정에서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 부탁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거나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학교에 상주해 계신 Well being Teacher (상담가 선생님)을 찾아가라는 말도 남겼다.



우리 아이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이 일을 계기로 아이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설명을 했다.  


"죽음은 슬프지만 우리의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거야.

한 생명을 잃는다는 건 아주 슬퍼. 슬픔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사람에 따라서 슬픔은 짧을 수도 오래갈 수도 있어."


아이 놀란 눈으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엄마, 그 오빠는 천사가 됐어요?라고 묻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가 슬퍼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아프지만

뚝 그치라고 하지 않았다.


슬픈 건 당연한 거니까.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나는 아이를 오랫동안 꼭 안아주었다.



그날 이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여기저기서 빵빵 경적 소리가 들렸다.

평화로운 아이들 등교시간에 경적소리를 듣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 그런가 하고 의아해하며 두리번거렸다.


한 차가 눈에 들어왔다.

뒷유리에 

"Honk for Jasper' "재스퍼를 위해 경적을 울려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 차는 사고로 목숨을 읽은 재스퍼의 부모님 차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차의 뒤를 따르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차들을 따라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경적소리가 나를 울렸다.


누구에게는 아이들 등교시간에는 안 어울릴지 모르는 시끄러운 소음이었을 수 있지만,

내 귀에는 그 소리가 재스퍼 부모님을 위로하는 노래 같았다.

"우리도 재스퍼를 알아요. 힘내세요. 우리도 재스퍼를 그리워해요"라고 하는 것처럼. 



주 뒤,


학교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공지가 올라왔다.


시간이 되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컵케잌을 구워서 함께 나누지 않으시겠어요?
xx월 xx일은 재스퍼의 10번째 생일이에요. 우리 함께 재스퍼의 생일을 축하해요.


약속된 재스퍼의 생일이 오자,  

이 집 저 집에서 컵케잌을 구워왔다.

각자 집에서 개개인이 구워와서 모양도 맛도 다 각기 다른 컵케잌을

600명이 넘는 전교생 아이들과 선생님이 나누어 먹으며

재스퍼의 생일을 다 함께 축하했다.

하늘에 있는 재스퍼도 이 정성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까지 본 생일 파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 파티였다.




이후 페이스북에는 재스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이지가 생겼다.

일 년에 한 번씩 재스퍼의 기일이 다가오면 재스퍼의 엄마는 재스퍼를 그리는 글이나

살아생전 재스퍼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남긴다.

같은 학교 엄마들도 매년 재스퍼를 그리워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그 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이지만,

재스퍼는 음주를 하고 운전을 하던 외국인의 의해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재스퍼의 부모는 그 운전자의 처벌을 바라지 않았고,

대신 외국에서 방문하는 운전자들을 위한

안전 수칙 교육시간을 충분히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재스퍼를 그 운전자 때문에 다신 못 보게 되었는데도,

벌을 주기보다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막고 싶은

재스퍼 부모의 따뜻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일을 계기로 학교 공동체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한 학생의 죽음을 학교에서 얼마나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받아들이는지.

아이들의 혹시라도 받을 수 있는 충격에 대해 어떠한 대처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한 가족이 겪은 일에 대해

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걸 보면서

학교가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큰 하나의 울타리 안 하나의 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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