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도 명절이다

by 로린

일 년 중 가장 화려하고 반짝이는 시즌. 크리스마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고 여기저기서 캐롤이 들려오면 눈이 안 오는 호주의 무더위 여름에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


크리스마스에 호주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크리스마스를 가족들하고 보내는 것. 크리스마스가 오기 몇 달 전부터 사람들은 온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친가, 외가, 먼 친척들까지 모이는 설레는 크리스마스는 서양의 명절이다.


실제 호주부부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리 집 먼저 가냐, 너희 집 먼저 가냐 하며 눈치싸움을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통 부모님 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모두 챙기기 때문에 가족구성원마다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남편 쪽, 아내 쪽 집안의 다른 전통이나 문화에 맞춰야 하고, 금액도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 음식은 각자 집에서 해오기로 하는 집들도 있고, 만나서 함께 준비하는 곳도 있다. 각 집안의 문화나 각 개인의 음식취향, 알레르기 유무에 따라 여러 가지로 고려해 준비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심한 결정과 의견이 필요한 부분이 많이 생기는 만큼 부부간에 쉬운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가족들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에 상처받는 일도 생긴다.


간혹, 한국분들로부터 외국 가족들은 쿨 할 것 같다. 고부갈등, 장서갈등, 가족갈등 없이 미국 시트콤처럼 다정한 가족 들이지 않냐 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20년간 살면서 본 호주 가족들도 한국가족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명절이나 생일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돈 보내달라고 계속 연락하는 시어머니.

형편 어려운데 집안전통이니까 애들 꼭 사립학교로 보내라고 강요하시는 장인어른.

가족들 다모였는데 함께 어울리지 않고 혼자 티브이만 보는 아버지.

왜 취직 안 하냐. 결혼 안 하냐 눈치 주는 고모.

자식자랑 하느라 침이 마르지 않는 동서.

어떻게 사는지 연락도 없고 가족모임에도 안 나오는 형.


내가 주위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만 해도 마블시리즈 정도로 스펙터클 한 가족들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잘생기고 매너 좋고 돈 많은 재벌남편처럼, 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늘 웃고 서로 안아주고 행복하기만 하는 가족은 별로 없다. 사람 사는 건 다 같다. 가족들은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고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즐겁고 행복한 가족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따로 살다가 일 년에 한 번 큰 명절날 서로 모여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좋은 시간도 있겠지만 반가운 마음과는 다르게 서로의 기대가 간섭이 되고 걱정이 잔소리가 되면 피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명절은 딱 산타를 믿는 나이정도까지만 즐거운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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