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6학년이 되자마자 우리는 졸업식 일정을 받았다. 날짜를 받아보고 나니 1년도 안 되는 시간이 남았다는 걸 알았다. 남은 시간을 더 소중히 아껴 아껴 보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하지만 꼭 시간이든 돈이든 내가 아끼고 싶을 땐 더 빠르게 내 손을 빠져나가 버린다.
눈 깜짝할 새에 일 년의 반이 지나갔을 때쯤, 아이는 졸업식에 입고 갈 착장이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호주의 졸업식에 아이들은 교복이 아닌 드레스나 원피스, 스마트캐주얼이나 슈트를 입는다.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벌써 논의가 한창인 듯했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 초등학생 졸업식은 처음이라 어떤 정도가 적당한 드레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몇 벌의 원피스를 사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시티와 스커트 정도로 합의가 되었다. 의상을 결정하는 데에도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헤어는 어떻게 하며 신발은 어떤 걸 신을지. 고민 after 고민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7년을 기념하는 건 좋지만 너무 요란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요즘 호주 초등학교졸업식은 다 이렇게 한다기에 못 이기듯 아이에게 다 맞춰주었다.
졸업식 착장준비로도 부담스럽던 나는, 아이 친구의 엄마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고 까무러쳤다. 문자의 내용은 "아이들 12명을 모아 리무진을 빌려 졸업식에 데려갈 예정이에요. 함께 하고 싶으시면 알려주세요 가격은 $85불입니다" 겨우 만 12살짜리 초등학교 졸업식에 리무진이라니. 게다가 1-2시간 롸이드에 한국돈으로 약 7만 7천 원을 웃도는 가격이다.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보다도 비싼 돈을 겨우 1-2시간 리무진을 타는데 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를 앉혀두고 물었다. 아이는 친구들이 하니까 리무진을 타고 싶다고 했다.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엄마는 너를 위해 그 정도 돈을 쓰는 게 아까운 건 아니야. 그보다 더 해줄 수도 있지. 하지만 엄마는 너의 나이에 졸업식 한 번을 위해 리무진을 타는 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친구들이 하니까 너도 하고 싶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하는 거야. 엄마는 네가 시간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이는 며칠간 생각을 해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봐도 리무진은 너무 과한 거 같아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내 친구들도 모두 다 하지는 않는데요. 그중 몇 명은 저처럼 너무 과한 것 같다며 안 한다고 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젓한 아이의 모습에 뿌듯했다. 아이가 그렇게 크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하고 싶은 거 말고,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고 주장할 수 있게. 결국 리무진을 탈 아이들을 모집하던 아이엄마는 졸업식까지 12명을 채우지 못해 나머지 아이들끼리 돈을 더 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손꼽아 기다리고 나는 천천히 오길 바랐던 졸업식날이 왔다.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졸업식 전 시간이 좀 있어서 아이와 함께 네일아트를 받고 카페에서 단둘이 수다도 떨며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왜인지 곧 멀리 유학길 떠나는 친구 붙잡고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앞으론 자연스럽게 나보다 친구들하고 이런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겠지.
보통은 학교에서 졸업식이 이루어지는데 올해는 아이 학교에서 소극장을 빌려 졸업식을 진행하게 됐다. 왜 극장이지?라고 생각했던 의문은졸업식이 시작되고 금방 사라졌다. 졸업식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7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한 편의 연극공연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부모님들 만큼 혹은 부모님들보다 큰 아이들이 하나씩 무대로 올랐다. 등장한 아이들 뒤로 아이들의 입학부터 한해 한해 성장한 모습들을 시간순으로 만든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객석에는 아이들이 7년 동안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함께 하셨던 선생님들이 졸업식에 참석하셨다. 그동안 학교를 옮기거나 육아휴직을 지냈던 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들까지도 모두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시러 오셨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모든 6학년 아이들은 이름이 호명되는 대로 나와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학생회장도 부회장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장애가 있는 아이도 모두 똑같은 졸업장 하나를 받았다. 그 외에 다른 상장은 없었다. 수여식 후 아이들은 객석옆 계단으로 내려와 부모님들을 향해 서서 'Don't stop me now'라는 퀸의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의 졸업식은 마지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걸 이야기하듯. 노래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은 파티를 위해 퇴장했고, 부모들은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감독하에 아이들은 저녁식사와 디스코 파티를 즐기고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졸업식행사가 끝났다. 아이들에게 줄 꽃다발을 사 온 부모님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누가보아도 졸업식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6학년이니까 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을 위한 졸업식이라는 것이 진심으로 느낄 수 있도록 졸업식을 준비해 주신 학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