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워라밸의 천국일까

by 로린

호주에서는 풀타임 직원의 경우 일 년에 4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일 년에 최대 10일까지 유급 병가도 낼 수 있다. 여기까진 정부가 정한 노동법의 최저 기준. 직원들을 위해 더 베풀고 싶은 회사들은 생일 휴가라고 해서 생일날 휴가를 주기도 하고, 장기근속 직원들에게 추가 유급휴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휴가 일수가 많은 호주를 사람들은 워라밸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유급휴가가 4주나 되면 실컷 휴가를 내고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겠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호주는 많은 직장인들이 Work과 Life 사이의 균형을 조화롭게 이루면서 행복하게 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호주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7-9월 기준 호주 회사원 전체 1억 6천만 일의 휴가일이 쌓여있다고 한다. 이 중 22%는 4 주이상의 휴가일이 싸여있다고 한다. 1년어치의 휴가일을 모두 쓰지 않은 셈이다. 10 이상 호주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도 1년에 4주 유급휴가를 모두 다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인사과와 아주 밀접하게 일하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호주사람들이 생각보다 휴가일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워라밸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호주에서 왜 사람들은 휴가일을 쓰지 않는 걸까.


첫째, 호주 사람들이 자주 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 중 생각보다 놀라웠던 이유는 높은 업무량 때문이다. 실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호주 회사원들의 절반은 높은 업무량 때문에 번아웃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나는 호주사람들은 5시 정각이 되면 일하다가도 펜을 집어던지고 바로 일어나서 퇴근하는 줄 알았다. 호주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저녁 8시, 9시에도 불이 켜진 오피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5시 이후에 일하는 건 오버타임수당을 받기 때문에 괜찮을까? 보통 오피스 풀타임 정직원들의 경우 적당한 오버타임은 월급에 포함된다는 조항이 근로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 사무직의 경우 오버타임 수당을 받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호주에서 2024년에 '퇴근 후 연락 거부권'이라는 근로자들이 근무시간 외에 업무 관련 연락에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법이 법제화되어 시행되게 되었겠는가. 그만큼 오버타임으로 힘들어하는 근로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야근에 비하면 적은 양의 야근이겠지만, 호주에서 상사가 늦게까지 일을 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눈치'라는 것을 보고 퇴근을 미루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호주의 회사 문화가 아니었다. 휴가도 마찬가지. 호주 직원들이 상사나 다른 팀원의 휴가 일정을 봐서 휴가일을 정한다. 내 업무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가하기도 미안하고, 회사가 너무 바쁠 때 휴가를 내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호주는 퇴직금이 없다. 호주에서 퇴직을 하면 퇴직금은 한 푼도 없는 대신 모아둔 휴가를 정산받을 수 있다. 즉, 유급휴가를 은행에 저금하듯이 모아서 나중에 목돈으로 찾으려는 목적 때문에 휴가를 쓰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저금한는 걸 어려워하는 호주사람들 중에는 특별히 돈을 따로 모아두지 않아도 휴가를 가지 않으면 목돈이 모이기 때문에 저금대신 휴가일을 모은다고 한다. 호주의 평균 근속 기간은 3.3년이다. 웬만한 사람은 3년이 좀 지나면 이직을 고려한다는 이야기. 이직을 맘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퇴직 후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휴가일을 모으려고 휴가를 가지 않는 것이다.


호주의 근로자들은 칼 같은 정시 퇴근을 매일 누릴 것이라는 것, 쉬고 싶을 때마다 맘 편히 휴가를 내고 놀러 다닐 거라는 것은 내 오해였다. 아무리 법으로 4주의 유급휴가와 10일의 병가가 주어진다고 하더래도, 휴가도 칼퇴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호주 회사 동료들을 보면서 유명한 복지국가라고 해도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다'라는 것은 글로벌 불변의 진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 -

https://theconversation.com/australian-workers-hoard-more-than-160-million-days-of-untaken- leave-so-could-you-be-forced-to-take-a-break-243352


https://thesector.com.au/2023/10/26/stress-levels-in-australian-workplaces-among-the-highest-as-we-battle-constant-interruptions-and-irritating-colleagues/? utm_source=chatgpt.com


https://people.com/australian-right-to-disconnect-law-allows-workers-ignore-after- hours-emails-8703620?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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