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재택근무 하는 호주 워킹맘

by 로린

2020년 온 세계를 두렵게 한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온 세상이 전쟁이 난 것만 같았다. 호주에는 5km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봉쇄령이 내려졌고, 길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없이 고요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코로나라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무시무시한 그놈을 만나지 않으려고 예방 접종을 2차 3차까지 하고, 아무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어딜 가든 소독 또 소독을 했다.


봉쇄령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매일 우다탕탕 등교준비, 출근 준비로 정신없던 우리 가족에게 여유가 찾아왔다. 빨리 준비하라고 닦달하고 겨우 토스트 하나 던저주던 엄마가 아침부터 지글지글 베이컨을 굽고 스크램블 에그를 해주고 함께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으니까 우리 아이들은 아침부터 기분 좋아졌다.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호주의 아이들은 교과서가 없다. 숙제는 매일 책 읽기와 받아쓰기뿐이라 도통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아이들이 수업받는걸 옆에서 보면서 아이가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어떤 것을 관심 있어하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아이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업무 중에도 틈틈이 아이 온라인수업을 봐주다 보니 퇴근이 늘 늦어졌지만, 퇴근 후 1시간씩 운전을 해야 아이들을 볼 수 있었던 엄마가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미 아이들과 함께 웃고 놀 수 있다니, 나도 아이들도 만족스러웠다.


운이 좋으면 네 가족이 다 함께 하는 시간이 하루에 겨우 1시간 정도였는데, 다 같이 집에 있으면서 보드게임, 요리, 영화 보기 등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코로나 때문에 세상은 차갑고 살벌했지만, 우리 가족은 따뜻해지고 가까워졌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이 한 달, 두 달 길어지면서 나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서 책상. 점심 먹고 돌아서서 책상. 저녁 먹고 아이들과 시간 보내고 난 후 또 책상에서 잔업을 했다. 일이 끝나면 남편과 앉아서 맥주 한잔하면서 핸드폰으로 장보고 배달을 주문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내 몸뚱이는 커져만 가고,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아파왔다.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아픈 날이 늘어갔다. 하루에 30분씩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했지만, 산보정도는 내가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움직임이었다. 회사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매일매일 하는 그 움직임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집에서 일을 하면 틈틈이 집안일도 하고 음식장만도 하고, 청소기도 돌려놓고, 빨래도 해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재택근무를 해보니, 그건 나만의 환상이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업무는 쉴 새 없이 계속 돌아가고 전화에 이메일이 끊이지 않는데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따로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과 다를 바 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해두고 퇴근 후에 집안일을 했고, 밀린 집안일은 주말에 모아서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가 더 눈에 띄고, 청소기는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데도 내 손은 쉼 없이 계속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내 손과 발이 두 개씩밖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애통할 줄이야.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코로나는 잊히고, 아이들은 학교로, 어른들은 회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 회사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회사로 돌아갔지만 우리 팀은 재택근무로 남았다. 그렇게 5년째 재택근무를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는 재택근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던 때보다 장기간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직접 느낀 장점과 단점에 대해 소개하고 싶었다.


시간

장점: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의 2시간씩 길에서 보내던 시간들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하루의 2시간, 일 년에 주말 빼고 일한날만 계산해도 얼추 50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아낀 셈이다. 가족들의 식사를 더 신경 써서 챙길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에도 배달음식이나 기성 음식대신 직접 요리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단점: 출퇴근의 개념이 모호해졌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일을 할 때도 있었고, 밤늦은 시간에도 일을 했다. 회사에서는 점심을 직원 휴게소나 회사 밖 벤치에서 먹었지만 집에서는 업무를 하면서 책상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회사에서는 내 책상을 벗어나면 보이지 않았던 메시지나 이메일들을 울리는 알람을 집에서는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어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응대를 하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집에서 근무를 하면서 출퇴근에 쓰는 2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2시간 이상의 내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비용

장점: 차 기름값과 나의 밥값을 아꼈다. 끝을 모르고 솟아오르는 기름값을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하다 보면 사놓은 음식을 잊어버리고 버리거나 외식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집에서 전날 먹고 남은 음식이나,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은 음식들을 버리지 않고 내 점심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쓸데없이 버려지는 음식을 줄일 수 있고, 나가서 먹는 날이 많이 줄었다.


단점: 전기세 폭탄. 집이 사무실이 되다 보니 하루 종일 있으면서 전기로 쓰고, 겨울엔 난방비, 여름엔 냉방비가 들어가는 것도 무시 못한다. 최대한 옷을 껴입고, 최대한 더운 것을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국내여행 가는 것보다 남극에 가는 것이 더 가까운 호주에서 남극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날씨와, 여름엔 40도를 맴도는 날이 연속 3일에 이어지면 무작정 버티는 건 무리였다. 여름에 춥고, 겨울에 덥도록 냉난방을 틀어주던 회사가 새삼 고마워졌다.


비대면

장점: 내향인성격의 나로서는 재택근무를 하면 비대면으로 일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호주사람들은 말이 정말 많다. 매일 출근하면 1시간은 수다만 떨고 있을 정도다. 근무하다가 복도를 걸어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고 또 수다가 이어진다. 늘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같고 일에도 효율을 떨어뜨리는 수다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줄었다.


단점: 비대면으로 일을 하다 보면 회사의 분위기가 잘 읽히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어떤 업무가 어느 정도의 신속성을 요하고 갑자기 일어나는 회사 상황에 반응해야 하는데, 회사 분위기를 파악하고 업무의 중요도를 판단해 미리 계획하는 것이 어렵다. 재택근무를 하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줄어들 거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물론 불필요한 수다는 많이 줄었지만, 1분도 안 걸리는 말로 대화하면 해결될 일들을 이메일로 설명하려니 이메일이 더 길어지고 많아졌다. 대면하지 않는 대신 전화응대를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아이들

장점: 엄마가 집에 있다. 아이가 하교 후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읊어 나는 모습을 보면 집에서 일을 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늦게 퇴근하고 오는 엄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날동안 하고 싶은 말을 삼켰을까. 아이들이 방과 전/후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바로 픽업한다. 늘 아이들 학교 근처에 있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가장 뿌듯한 시간은 아이들의 방학기간이다. 아이들이 누구에게 맡겨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방학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도 함께 해주고, 늘 따로 먹는 점심도 방학엔 함께 앉아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단점: 엄마가 집에서 있다.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엄마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엄마랑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집에서 큰소리를 내지도 못하게 하고, 엄마가 업무전화를 할 때면 알아서 티브이소리를 낮추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집이 편안히 쉬는 집에 못되어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나는 팀 회식이 있을 때나, 집에 단전이나 단수가 있을 때 등 일 년에 한두 번만 사무실에 나간다. 어쩌다 회사를 다녀오면 집에 들어오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얼굴이 달라 보여. 재택근무가 좋다면서 회사 갔다 오니까 신이 난 것 같아' 분명히 나는 혼자 있는 게 가장 행복한 내향인인데. 한번 외출을 하려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오고 가는데 시간이 걸리고,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수다를 떨어야 하지만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받고 오면 리프레쉬되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역시 혼자 살 수 없는 거 아닐까.


어떤 이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돈 버는 애엄마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과 회사의 경계 없는 삶을 5년 넘게 이어오다 보니 집과 회사, 공과 사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최근 호주에서는 집과 회사를 번갈아가며 발란스 있게 일하는 하이브리드 (Hybrid) 근무형식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아이들 학교 등하교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놓지 못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며칠은 집에서 며칠은 오피스를 나가는 하이브리드 근무도 이상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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