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냉정한 직장현실

by 로린

다정하고 친절한 호주 사람들과 일하면서 회사에서 실직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을 때의 심정은 마치 친절한 사이코패스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호주 회사에서 사람을 내치는 방식은 냉정하고 차갑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처음으로 그런 상황을 목격한 날은 여느 평범한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모두 출근해서 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티타임을 가지며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근무를 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 한 직원이 보이지 않아 매니저님께 여쭤보니 “오늘 오후부로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 일하지 않을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런 감정 없이 말하시는 매니저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매니저님, 아침에 같이 웃으면서 우리 다 같이 재밌게 이야기 나눴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삼켰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은 남이 된다는, 아니 오전의 동료가 오후에는 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퇴사 통보를 받는 즉시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 출신 사장님이 운영하던 여행사에서 일할 때였다. 가족 중심의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을 따뜻하게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업무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일로 힘들던 시기에 어렵게 퇴사를 결심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담담하게 알겠다고 하셨고, 나는 담당 고객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이메일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다가와 “지금 당장 컴퓨터 끄고 나가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고객분들께 작별 인사는 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평소 따뜻했던 사장님의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에 충격을 받아, 바로 짐을 챙겨 나와 공원 한가운데 앉아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2018년, 태양광 패널을 도매로 판매하던 소규모 회사에서 회계와 급여를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오후 2시까지만 근무해서 워킹맘인 내게 딱 맞는 일이었고, 사람들도 좋아 감사한 직장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일주일 내로 회사문을 닫게 되었다고 통보하셨다. 회사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거래처에 대금을 못 줘서, 사장들이 물건을 그냥 들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불과 일주일 전에서야 통보한 것이다. 호주에서의 실직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가 하면, 감당할만한? 실직도 있다. 남편은 코로나 시기, 회사가 어려워지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호주에서는 회사 구조조정이나 직책 폐지로 인한 해고를 ‘Redundancy’라고 한다. 이는 직원의 잘못이 아닌 회사 사정으로 인한 해고다. 이런 경우, 노동법에 따라 최대 16주의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남편은 회사로부터 3주간의 유급 구직 기간과 함께 3개월치 급여를 한 번에 받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였던 사장님은 우리 아이들이 눈에 밟혔는지, 아이들을 위한 트리 클라이밍 이용권도 선물해 주셨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남편은 3개월치 급여가 닳기 도전에 연봉이 더 높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급여 담당자로 인사팀과 가깝게 협업하면서 다양한 해고 사례를 접하고, 또 직접 경험을 하기도 하며 느낀 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내일 당장 남이 될 수 있고, 든든한 나의 직장은 내일 당장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호주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게 대하되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으며, 구직 사이트를 매일 들여다보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퇴근시간이 오면 나는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다 보니 오늘도 살았구나!


기억에 남는 퇴사 에피소드

리크루트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였다. 퇴사를 결심하고 매니저와 단독 면담을 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 이직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매니저는 알겠다고 했다. 면담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업무를 하려던 찰나, 뒤통수에서 “F**k!”라는 욕설이 들렸다. 얼마나 큰소리로 욕을 했는지 사무실 직원 그 순간 모두 얼음이 되었다. 방금 내 퇴사를 들은 매니저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을 내뱉은 것이었다. 매니저는 사과했고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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