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이지만 긴 여운을 준 써니

by 로린

주말 아침, 아이들 스포츠 경기가 있어 온 가족이 분주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집 앞에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엄마 품을 막 떠났는지, 아니면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아직 뽀송뽀송한 솜털 아기새였다.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차가 다니는 도로였기에 조심스레 인도 안쪽으로 옮겨주었다. 날개를 열심히 푸드덕거리긴 했지만, 아직은 날 수 없는 어린 새였다. ‘엄마에게 나는 법을 배우다 떨어졌나?’ 싶어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둥지도 엄마새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해지는데, 혹시나 아기새가 찻길을 돌아다니다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아기새를 우리 집 뒷마당에 안전히 내려다 주고 외출을 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기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니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태어난 지 두세 주쯤 된 듯했다. 우리 아이들은 햇살 가득한 봄날에 만난 아기새에게 ‘써니(Sunn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써니가 엄마를 찾아 무사히 날아가길 바라며 숨죽여 지켜보았다. 써니는 힘겹게 날갯짓을 하다가 금세 지쳐 몸을 웅크리고 잠들곤 했다. 여전히 엄마새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목이 마르거나 쇠약해질까 걱정되어 계란 노른자를 물에 풀어 수저로 건네보았더니, 몇 모금 축였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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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지났을까 — 드디어 엄마새가 나타났다.
써니는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크게 울었고, 엄마새는 써니가 안전한지 가까이 가서 살피더니 잠시뒤 먹이를 물고 와 써니의 입에 넣어주었다. 다행이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엄마새가 근처에 있고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면 아기새는 스스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써니를 최대한 접촉하지 않으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엄마새는 써니 앞에서 날개를 크게 퍼덕이며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써니도 열심히 따라 하는 듯싶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높은 곳에 올려줄까? 도와줘야 하나?’ 써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불안해하며 고민하는 나를 보며 큰딸이 말했다.


“엄마, 그냥 두자. 써니가 스스로 나는 법을 배워야지. 써니 엄마가 근처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무심하게 말하는 딸에게 나는 말했다.


“그러다 써니가 날지 못하고 약해지고 아파지면 어떡해? 혹시라도 죽기라도 하면?”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자연에서는 다 그런 거야.”


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꼭 딸이 꼭 써니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사춘기 시절을 지나며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 역시, 스스로 날갯짓을 배우는 중이겠지. 때로는 웅크리고 쌕쌕거리며 쉬어갈 날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만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고 뭉클했다.


안타깝게도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도 써니는 여전히 뒷마당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 집 주변에는 밤마다 야생여우와 야생 고양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날지 못하는 아기새가 그들 눈에 띄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써니를 하룻밤만 집 안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공기가 잘 통하는 강아지 캐리어에 부드러운 이불을 깔고, 나뭇잎과 흙을 넣어 자연스러운 둥지처럼 만들어주었다. 하루 종일 날아보려 애쓴 써니는 금세 깊은 잠에 들었다. 우리는 “굿 나잇 써니” 인사를 건네고, 우리 집 반려동물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철저히 문단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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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써니에게 아침인사를 하러 간 작은딸이 아주 다급하게 엄마 아빠를 불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쉬며 쌕쌕 잠을 자던 써니가 우리 곁을 이미 떠난 후였다.


나는 주저앉아 눈물을 삼켰다.
큰 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 그냥 두자. 자연에서는 다 그런 거야.”


‘그냥 뒀어야 했나. 내가 괜히 써니를 죽게 한 건 아닐까.’ 큰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미안해서 써니를 볼 면목이 없었다. 후회하며 슬픔에 빠진 나 대신 우리 딸들은 써니의 마지막 모습을 담담히 바라봐줬다. 우리는 써니를 조심스레 싸서 자주 가는 공원에 묻어주었다. 주말마다 그 공원에 산책을 가서 써니에게 사과한다.


써니야,

비록 짧은 시간 우리 곁에 있었지만

너를 통해 참 많은 걸 배웠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햇살 가득한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라.


써니가 우리의 곁을 떠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써니의 엄마는 여전히 우리 집 뒷마당을 찾는다. 아이를 찾는 써니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고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써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우리가 지켜주고 싶었는데.. 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너무 불안하지 하고 안타깝지만, 결국 그들이 스스로 배우고 이겨낼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부모의 조바심이 때로는 사랑보다 앞서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기새들은 보통 부화 후 2~3주가 지나면 나는 연습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둥지에서 떨어지거나, 야생 동물에게 잡히거나,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해 생존율이 20~3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일을 겪은 뒤로, 동네에서 보는 흔하디 흔한 새들이 전보다 다르게 보인다. 나보다 작고 약해 보이던 새들이 그렇게도 낮은 생존율 속에서 살아남은 아주 강한 생명이었다니. 이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 비록 보기에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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