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불 이상을 아이 스포츠활동에 쓰는 이유

by 로린

아이가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어 해서?


아니다.

돈이 많이 드는 귀족 스포츠를 해서?


그것도 아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방과 후와 주말에 스포츠를 취미로 즐긴다. 아이가 하는 종목은 넷볼과 배구, 두 가지다. 둘 다 ‘귀족 스포츠’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1,000달러가 넘는 비용이 들었을까?


아이는 네트볼 클럽팀, 넷볼 협회 대표 선발팀, 그리고 배구팀 이렇게 세 팀에서 뛰고 있다. 각 팀마다 트레이닝과 경기 일정이 따로 있고, 가입비·훈련비·경기 참가비도 각각 부과된다. 이 비용만 합쳐도 1,000달러가 훌쩍 넘는다. 여기에 팀별 유니폼, 네트볼·배구 전용 신발 등을 포함하면 추가로 약 500달러가 든다. 교통비와 이동 시간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아이는 스포츠로 대학을 갈 생각도, 프로 선수가 될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아이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가? 우리 부부는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맞벌이로 부부가 매일 9-5로 일하면서 아이의 트레이닝과 경기스케줄을 위해 직접 라이딩한다. 그럼에도 1천불이 넘는 돈과 시간을 들이며 우리가 아이의 스포츠 활동을 꾸준히 지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운동은 아이의 건강에 필수이다.


물론, 운동이 아이들 건강에 좋은 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청소년기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운동이 필수인 걸까?


WHO(세계보건기구)는 만 5세에서 17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이 하루 최소 60분 이상, 중간 강도 이상의 유산소 신체활동을 해야 한다고 권장하며 이는 청소년 아이들의 신체, 정신, 사회적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Physical activity is beneficial to young people’s physical, mental and social health. Children and adolescents should engage in at least 60 minutes of moderate- to vigorous-intensity physical activity daily.”

— WHO, Global Recommendations on Physical Activity for Health (2010, reaffirmed 2020)


‘중간 강도 이상’이란 땀이 날 정도의 달리기, 줄넘기, 스포츠 경기 등을 말한다. 하루 60분이면 일주일에 최소 7시간은 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밖에 나가서 달리기를 한 시간씩 매일 하고 오라고 하면 할까? 줄넘기를 한 시간씩 매일 하라고 건강해진다고 하면 할까? 아이가 운동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운동을 꾸준히 매일 1시간씩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짜인 트레이닝 스케줄, 시합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일주일에 7시간의 운동은 쉽게 넘길 수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학교 체육 3시간, 방과 후 네트볼 트레이닝 2시간, 배구 훈련 2시간, 주말 넷볼 경기 1시간, 배구 시합 경기 하루 3~4시간 (1년에 3-4번 정도)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총 8~10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다. 그저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을 뿐인데 건강까지 챙기게 되는 셈이다.


직접 경험한 바로는, 실제 우리 아이는 일 년에 감기 한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잔병치레가 없다. 운동으로 다져진 덕분인지 근육이나 뼈도 튼튼해서 웬만한 타박상은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편이다. 비타민을 섭취하거나 우유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닌데도 중1학년 여자아이 키가 이미 162. 운동이 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둘째, 운동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운동은 단순히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힘을 길러준다.


스포츠 활동은 끈기와 자기 관리 능력(Discipline)을 길러준다. 여러 스포츠의 각기 다른 스케줄을 기억하고 빠짐없이 참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의 배구 훈련은 매주 월요일 오전 6시 45분에 시작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전날 스스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알람을 맞추며 컨디션을 조절한다. 이는 자기 통제력과 책임감을 배우는 훈련이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싫은 일을 해야 한다거나 꾸준히 같은 루틴을 꾸준히 해내는 힘을 가진다.


또한 운동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길러준다. 경기 도중 넘어지더라도 팀의 경기를 지체할 수 없기에 벌떡 일어나고, 비가 쏟아지는 야외 코트에서도 비를 해쳐가며 경기를 뛰고, 혹여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도 감정을 조절하며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경기를 뛰고 있을 때 아이 표정을 보면 엄마는 다 안다. 아.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고 있지 않구나. 상대방 선수가 하는 행동이 거슬리는구나. 넘어져서 아픈데도 참고 뛰고 있구나. 마음이 불편하고 흔들리지만 집중해서 끝까지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아이가 미래에 어떤 시련을 맞닥뜨려도 꿋꿋이 견뎌낼 단단한 마음을 키우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는 매주 다른 동네에서 오는 또래 아이들과 시합을 치른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에서 익숙하게 보는 친구들이 아닌,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지만 40분 동안 함께 땀을 흘리고 몸을 부딪히며, 상대의 움직임과 표정을 열심히 살피다 보면 경기 후, 방금 전까지 서로 격렬히 경쟁하던 상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상대팀 친구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이런 경험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의 사회성(Social Skills)을 키워준다. 사회성이 높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상대방과 건강하게 경쟁할 줄 알며,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것이다.


셋째, 운동은 집안의 평화를 지켜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의 순 기능인데, 아이가 스포츠를 했을 뿐인데 집안의 잔소리, 아이들과의 다툼이 사라진다. 중1, 초4.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예민해질 시기인데도, 사춘기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반항적인 태도도 크게 없는 편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쌓이면 결국 폭발하고, 문을 쾅 닫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운동은 그 감정을 몸으로 풀어낼 수 있는 가장 건강한 통로다. 땀을 흘리며 뛰고, 소리치며 공을 던지다 보면 불안과 분노가 빠져나간다. 아이가 운동하고 난 후에는 얼굴이 개운하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이 말해준다.


하버드 헬스 보고서에 따르면, 꾸준한 운동은 가벼운 우울과 불안을 완화하는 ‘천연 항우울제, 진정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Exercising regularly can improve symptoms of mild to moderate depression as well as anxiety and psychological distress.”


아이가 디지털 매체에 빠질 시간이 없다. 방과 후 1시간 운동하고 집에 오면 5시, 저녁 먹고 씻으면 7시, 취침은 8시 반~9시. 주말에도 경기로 하루를 보낸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게임·TV에 집착할 여유가 없다. 억지로 스크린 타임을 제한하지 않아도, 운동이 아이의 일상을 건강하게 채워주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이 디지털 매체에 빠지는 건 주로 사회적인 교감을 위해서, 혹은 혼자서만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디지털 매체에 심하게 빠지지 않는 것이 가능한 건 사실, 아이 친구들 덕분이기도 하다. 친구들이 하교 후에 스포츠 활동 스케줄로 바빠서 핸드폰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리 아이 핸드폰에 연락 오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는 핸드폰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아이의 신체건강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사실 그 뿌리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철학에 있다. 그리스인들은 지성, 감성, 신체의 조화를 이상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보았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이성은 통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성만 이성이 약한 사람, 혹은 지성만 뛰어나고 체력이 약한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를 잘 성장시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물려줄 거대한 재산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을 물려주고 싶다. 세상의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근력,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튼튼한 체력. 지금 내가 아이 곁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홀로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호주 청소년 아이들은 대부분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중, 주말에 스포츠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 큰 아이가 친구랑 나눈 대화.


‘너 주말에 뭐 해?’

‘나 농구게임 있어. 너는?’

‘나는 넷볼게임있어’

‘ 우리는 주말에 운동을 안 하면 뭘 하고 시간을 보냈을까?’

‘몰라! 하하하하’


자기들이 너무 좋아서 매주 하는 운동인데, 동시에 운동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말이 왠지 마음에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운동을 학원이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이 대화는 한국 아이들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공부든 운동이든 한 가지밖에 모르는 아이들.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구진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꼭 알려줘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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