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의 MBTI

엄청 외향적이신 것 같은데, 맞죠?

by 로렌스




지난 밤, 모임에서는 폭소가 끊이지 않았고 나는 가볍게 들떠 있었다.

끝물인 것 같으면서도 여전한 엠비티아이 이슈였다. 어김없이 내게도 시선이 쏠렸다.

막 떠오를 참이었던 나는 발바닥 아래에서 내 부유를 기분좋게 보조하던 무언가를 천천히 눌러 깔고 앉아버리고야 말았다.


E 맞죠,

맞죠? 엠비티아이 뭐예요?


기면 기고 아님 아니다 하면 될 것 같으면서도 참 쉽지가 않았다.

문득 어딘가에서 드러나는 내 ‘외향성’ 덕분에 기분좋게, ‘알 것 같아요! E이실 것 같아요‘ 기대에 찬 질문을 받는다, 때로.

그런데 가끔 오는 이 순간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나도 모르게 바로 직전에 꺼내놓고 까먹은 지갑 행방 찾듯 주섬주섬하게 된다.

갈 곳 잃은 동공과 손짓, 괜히 코 언저리에 손끝을 대고 큼큼하며 시간을 끈다.

우다다, 내 우울이 갑자기 툭 터진 틈새로 비죽 삐져나가진 않았나 아래로 멀리로 시선은 마구 떨린다. ‘들켜서는 안돼‘, 뭐 이런 마음일까?


아니면


‘지금이야 지금 떨어뜨려버려, 들켜버려! 여태 나대고 떠들고 웃겼잖아 그런데 최악의 반전 나는 우울증이오!

엠비티아이고 나발이고 그런 걸 고를 때가 아니랍니다 해버려!‘


이건가?


늘 비슷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아 뭐~이렇게도 나오고 저렇게 생각되기도 해요. 5.5:4.5 다들 그렇지 않으세요? 전 애매한 것 같아요! 크크‘

그럼 다같이 하하 맞아 진짜 그래 나도 이 얘기 할 때마다 사실 내가 테스트 해보고도 내가 그렇다고? 싶을 때도 있고 박빙 끝에 쬐금 앞선 게 끌려나오기도 하고 그래요

하고 엠비티아이의 모호함을 다같이 두루 공감하며 대충 매듭이 지어진다.


그러니까…별 것도 아닌데, 이럴 때는 혼자 삐죽삐죽 예민해진 마음이 가여워 재빨리 등 뒤로 손을 슬쩍 올려 나를 톡톡 쓸어보곤 한다.

그 E냐 I냐의 기로에서 E로 보여지는 내가 어딘가 부적절한 것만 같다.

기어이 밝고 호쾌해보이려 악셀레이터라도 밟은 듯 나를 몰아붙이다 어딘가 튀어나와 있던 딱딱한 것에 걸려 고꾸라진 것 같기도 하고.

여러 모로 고생이 많은 것 같아 임시방편으로라도 내가 나를 한 번 위로해 보는 거다.


골똘히 생각이 늘어진다. 모임이 끝나고 오면서 한참을 늘어지고 늘어졌다.

아, 정말이지 뼛속까지 솔직하고 싶고 그저 나 그대로가 가공되지 않은 채 보이길 나는 늘 원하는데.

우울증이 있는 나와 I가 아닌 나는 괜스레 조화롭지가 못하고 어느 한 쪽은 정말이 아닌 것 아닐까 혼란스러워, 영 꺼림칙했던 것 같다.


나도 참 웃긴게, ‘사실은 제가 좀 안 좋아요 우울증…’

같은 말을 꺼내지도 못하면서 어떤 식으로 보이기를 소망하는 요상한 모순은 또 뭐람. 다시 또 속상.


뭐 우울증의 전형이긴 한 것 같다. 내 패턴이.

누군가를 마주할 때나 크고 작은 사회적인 상황 앞에서라면 기꺼이 가면을 탁 끼워 쓰고 가열차게 에너지를 뿜어내고

그 시간이 끝나고 또 비슷한 시간이 제안돼도 오 그럼요! 또 좋죠~하고 여유있게 다시 새 것을 쓴 채 자연스럽게 어디든 뛰어든다.

혼자된 시간에도 그걸 안 벗고 한참 달뜬 채로 있다가 무방비로 감정의 흙탕물에 가라앉아 또 한참을 눅눅하고 꺼끌꺼끌하게 고문 같은 때를 맞으면

비로소 가면을 벗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보곤 한다.


그렇다고 소중하고 고마운 몇 안되는 곁의 사람들에게 거짓된 마음을 던진 것은 아니겠지만

내게도 조금, 사람들에게도 조금 조금씩은 이런 괴리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다.

같이 맘을 나누고 말도 나누며 박수를 짝짝 쳤는데 나만 어딘가 엇박으로 갈라져 부스러진 조각들을 홀로 챙겨와 속수무책, 버리지도 못하고 잊지도 못하는 거지 뭐.


직관적인 택일을 하자면 아마 Introvert한 쪽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이만큼 상념이 길어졌던 것 같다.

성정과 우울증의 연관성이 그렇게 간단한 이음새로 돼 있지도 않을텐데.


E-우울증 환자인 나는 괜히 무색하고 서러워져 돌아오는 길 입안이 쓰다.

취조한 사람도 없는데ㅎ

끌어올려진 흥, 카랑카랑했던 음성, 반드시 터지게 하고야 말겠다 야심차게 쳤던 드립들이 실은 조금은ㅡ전부 다 정말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리고 때로 너무나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지만 어쩐지 그럴 수 없어 그러진 못한다는 것 모두가 쓰고 갑갑해서 괜히…


잘 정리되지 않아 전달이 어려웠고 헛되고 가볍기 짝이 없는 말들이라 불쾌만 일으킨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만

저처럼 이 비슷한 마음들로 긴 밤을 멈춰 지샌 누군가, 읽고 계시다면 우리 사이 멀고 먼 시간 사이로 위로를 띄워 보냅니다.

깜깜하고 적막한 겨울이지만 같은 마음들은 조용히 만나지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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