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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Dec 22. 2024

오랜 우울이 날씨가 될 때

아침의 찬란한 우울이 또 온다


우울증은 정신 없이 울고 울부짖는, 부산스러운 모습을 띠지 않는다.

그것은 자주, 조용히 깊은 데가 불안으로 울렁이며 그 파장이 익숙해질수록 그저 안으로 삼키는 한숨 끝을 홀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환자에게 매일의 날씨를 늘 비슷하게 느끼게 한다. 오늘의 날씨가 어떤 구름이든 어떤 기온이든 햇빛이든.

커튼을 젖히고 슬몃 여기, 오늘의 날씨 왔어 하고 뻔뻔하게 어제의 식은 메뉴를 들이미는 매일의 우울들을 맞으며

그 맑기도 하고 오묘하게 순진하기도 한 것에게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니 지치지도 않고 와서 지친 나에게 또 디밀고 있구나 나 원 참.


그래서 별 수가 없다 그래도 처음 마주한 날씨를 받아 안고 시작된 날을, 결국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해내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우울은 그저 손쓸 수 없는 날씨와도 계절과도 같아지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아주 높고 둥글고 새파란 하늘이며 또 어떤 날은 토독토독 곱게 내리는 비.

창 너머로 처음 만나는 매일의 아침. 조금씩 다른 우울을 받아들이며 그래도 애를 쓰는 내게서, ‘오랜 우울‘과는 다른 ‘진짜 아침’을 본다.


빨리 눈을 반짝 뜨고 빠르게 일어나 마음을 환기시키기란 어렵다. 그나마 시간을 앞당겨 약을 챙겨먹을 수 있다면 먼저 물을 따른다. 다행히 일어나 걸었다!

누워 비비적거리고 싶지 않고 다시 잠들지 않아도 될만큼 마음이 살짝 각을 틀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진정 이만큼 왔다면 안심이다.


해내야 할 일들, 아니 기꺼이 할 일들로 맘속에서 고쳐 말하고 조금이라도 오늘 해낼 수 있는 분량에 대해 생각하다 이내 자신이 없어진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재생시켜두고 태블릿 앞에 앉아 글씨를 쓴다.

여러가지 필체로 써 보면서 새롭게 하나 더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미간을 찌푸리며 고만고만하게 해 왔던 고민들에 또 빠져든다.

또 약간 기분이 나아진다.

최근 브런치북에 필사북을 만들어두었기에 추가된 생각. 뭐, 구독자도 없는데 이런 걸 자꾸 해 하고 답답하다 때려치워 했다가 맘을 고쳐먹었다.

너를 위해 해라 너를 위해. 뭐~그렇게 생각해보니 또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게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것에 점수 추가(무슨 점수여)


이젠 커피를 한 잔 만들고 뜨거운 김을 만나고 나면 그래 내 하루도 시작되는구나, 싶다.

우울은 매일이 실험처럼 느껴져서 때로 도박과도 같기 때문에ㅡ시간을 담보로 한 심각한 도박. 언제까지나 시간이 남아있을 줄 착각하고 이 어두운 마음과 진득하게 바닥으로 달라붙는 관성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 지켜보는 시간들은 마구 허비된다.ㅡ위태로운 나 자신을 구하기 어려워도 어떻게든 붙들어잡고 멈춰줘야만 한다.


그러나 우울이 내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그 또렷한 진실 때문에 가까스로 멈춰지고 또 붙들어진다. 나는 외출 준비를 하고 사과를 깎아먹으며 경쾌하게 머리를 매만지고 신발을 꿰어신고 나간다. 찬란하게 오늘도 나를 맞이하던 우울아 잠시 안녕, 하고.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웃음이 터져 마주보고 웃으며 바쁘게 일과를 정리해 간다.


아침의 우울처럼, 저녁이 다시또우울이어도.


게다가 오늘 또 이렇게 써 냈다. 와,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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