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은 날들
많이 먹고 배불러 잠든 날들.
폭식이기보다 고요해 지는 시간 뜨겁고 자극적인 맛+맥주의 조합을 하루가 끝날 때쯤 간절히 원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불만족이라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아무 일 없는 선 정도에서 끝나는 하루 끝이 맹맹하고 조금은 비루해져서. 안주를 곁들여 좀 취하면 그 맹맹하고 먹먹한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이 역시 폭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체중은 자꾸 늘어 가고 움직임은 줄어들며 옷들이 특히 바지가 맞지 않아지면서 ’우울이 결국 폭식과 비만을 데려왔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목을 우울과 식사…해 두며 보다 보니 내가 폭식을 했던가, 내가 생각하는 폭식의 와구와구 꾸역꾸역이 서로 어울리는 말들이었나 싶다. 그저 식사를 규칙없이 했다. 아주 늦은 밤에 하는 것을 습관들였다. 그렇담 우울과 폭식도 우울과 식사도 아닌 우울과 야식이 맞을까?
한 번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마음먹고 언젠가의 진료 중, 선생님 그런데 약이 혹시 체중 증가와도 관련이 있나요? 여쭸다. 선생님은, 아~니요.(웃음) 뭔가 조절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겠죠…
함께 애매한 웃음.
그건 식욕일까요?
더 물으려다 말았다. 맞겠지 뭐. 야밤의 식욕. 조용히, 생각하고 또 마음을 자연스럽게 하기가 어려운 나는
‘밤의 식사는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무어랴‘ 같은 그저 그냥 뭐 굳이 다짐이랄지 결심이랄지도 못 되는 간단한 이유조차 나에게 적용하기가 어렵다.
뭉치뭉치 느낌만 있는 깊은 곳에 있는 말은 조합해보자면 좀 뜨겁고, 떡볶이같은, 파스타같은, 오늘은 쭈꾸미같은, 비빔밥같은 건 기분이 살짝 뭉치보다는 나을 것 같다… 하는 ’뭐나 좀 먹을까’의 상세설명들이다.
주섬주섬 맥주부터 꺼내고 뭐 꺼내기 어렵다면 굴러다니는 캔을 세우거나…
어느새 내 얼굴과 몸뚱이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게 돼 있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것이, 다이어트를 해 본 경험도 없었고 몸무게가 변하는 일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하필 이런 때 찾아왔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또 마음의 아픔, 마음의 병, 너구나! 우울증을 또 때려잡고 보는 거다. 쓰는 지금도 대충,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끝이 흐려지는 말을 속으로 생각한다.
우울하고 예민하며 날카롭고 잠도 잘 수 없고, 클리셰로 보자면 우울증의 결과가 체중의 증가보다는 감량인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하겠으나 분명 그 단계도 지나온 기억이 있는데, 그 경우 마음의 파장이 크지 않다 당연히.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돌아다니며 검사하고 검사하며 체중 확인을 할 때 급격히 줄어든 수를 보고 이게 아닐텐데, 했었다. 옷매무새를 다시 봐도 크게 달라져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몸 속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던 알맹이가 쑥 빠져나갔나? 그건 그냥 풍선 한 개 만한 무게였나 같은 생각을 잠시 하고 넘어갔다.
지금은 할 걱정 없으니 이 걱정이다. 푹 퍼져버린 몸, 운동을 해야하네 같은 지루한 말 속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기분. 다이어트란 것은 강인한 의지와 또렷한 자기 인식이 필요한 것 아니었나? 나는 밤, 먹는 시간을 뺏겨야할텐데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면 괜찮겠지만 하의가 맞지 않는 지경인 나는 더욱 우울한데.
목 뒤가 뻐근하다.
오랜 먼지층이 텁텁하게 깔려 있는 지난 겨울 이불 몇 채 같은 걱정과 고민을 우울은 턱턱 던져준다. 그 덩치에 머리부터 등짝까지 깔리고 일어나 걷기 더 힘겨워진다. 우울증 때문 아니야, 나이 탓이지
나이 탓, 기초대사량 탓, 호르못 탓
여기저기 탓해봐야 또 우울한 오늘.
굶기까지 해야 하는 고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