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안우울, 매일의 커피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묻는 이들이 있다 내게.
커피를 마시는 이유라기보다는, 왜 이렇게 다 남기면서 커피를 주문하는거야?
이 질문들이다.
뜨거운 김을 안구에 불어넣기 위해 커피와 차를 주문하고
잔을 손목 안쪽부터 시작해 손가락 지문들까지 손바닥 전면이 닿도록 꽈악 끌어 안아 잡을 때, 그 순간과 스르르 코로 시작해 온 피부를 자극하는 향,
눈을 뜨지 못하게 하다 이내 속눈썹을 축축하게 적시는 뜨거운 김.
그게 이유다. 한 잔 다 따끈하게 말끔히 마실 수 없는 나에게 던져지는 물음들.
아, 싸우자거나 불만스럽게가 아니라 넌 진짜 신기하다 이렇게 다 남길 수가 있니? 가벼운 궁금증들이니까.
한두 모금 마시며 식도가 뜨거워진 후 그리고 가장 뜨거운 한 김이 내 눈 속으로 들어간 후부터는 안 마실 따름이다.
누군가는 갓 만들어낸 커피를 보면 다 남기는 나를 떠올린다고도 한다. 재밌는 사실이다. 왜 갓 나온 커피를 보고 딱 한모금 마시는 나를 떠올리는거여.
커피를 마신다, 한 잔 마신다기보다는 커피를 즐긴다고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꽤 어려운 문제다 이게 마음에 걸리는 걸 보니까, 내가 남기긴 정말 엄청나게 남겨온 것 같아서 그게 즐긴 게 맞긴 한가? 또 의문이 드는 거다.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를 잠시 즐기거나
커피에 관한 나의 균형감을 문득 생각한다. 찬 커피 역시 한계가 온다. 얼음이 다 녹으면서 농도가 옅어지면 또 못 마시겠다.
그래서 늘 엄청 남아있다. 커피가.
게다가 내가 만들어 내가 마실 땐 컵도 세 네 개가 된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하기 때문에.
커피를 즐긴 내가 마신 커피의 양, 정말 조금
남겨진 커피, 정말 많이
땅이 푹 꺼지고 정수리 위의 무언가가 낮게 웅얼거리며 내려앉는 순간 정말 많이,
뜨겁고 반짝 들뜨는 가벼운 기분, 정말 조금
커피가 곧 내 우울의 기복임을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어
자칫 뭐 엄청 짐짓 심오한 체 하네 갑자기 우울 타령이야 할 거서 같아 멈칫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 커피와 내가 사는 시간들의 균형을 오늘 생각한다.
아직은 위태롭지만 그것은 기울기도 하고 가끔 남기도 비워지기도 한다. 쓰는 것이 곧 위안이며 위로일 것으로, 약간의 평온을 가져다 주리라 기대하며 애써본 날들이었다.
늘 그렇지는 않았다. 쓸 말이 없는 때가 있었고 다 쓰고도 갑갑했었고 이게 다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또 애먼 데 불뚝불뚝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래도 병증이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에 가장 최적화돼 있어 여러모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10화가 목표였기 때문에 이제 마무리라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겠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시작할 생각이 든다. 일기에 지나지 않는 글들을 올려내면서 굳이 다른 분들께 공유할 만한 것인가, 좀 우습지 않나 무색한 마음도 없었다고 할 수 없겠지만 뭐, 써낸다는 약속만큼 좋은 명상이 또 있겠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 우울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 처음 나는 우울을 나누고 쪼갤 수 있을까를 질문했다. 우울을 가진 우울증에 잠식된 사람들이 모인다면 우리 각자의 우울들이 베어내지고 다듬어질 수도 있을지 …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미미하게라도 마음들이 닿았기를. 비슷한 물음들이 서로 기웃기웃하기도 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