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혹여라도(늘 바라는 바이지만 기대는 실망을 키우니까, 혹시나 혹은 하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를 읽어 주시고 마음으로 그래…해 주시는 분들께
:) 따스하고 느슨한 12월 보내시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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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참 이상해서 분명 공평한 것이고 늘 속도가 같다고한들 순간마다 요동치는 그래프 화면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제멋대로 흐른다.
연말 기분을 생각해 본다. 아주 어릴 적에는 11월 초가 되면 벌써 마음은 캐롤이었다.
적당히 오소소 소름이 돋는 찬 기운이 돌고 상점마다 성탄 장식은 뭉툭하고 커다란 것들로, '메리 크리스마스'에 기분 좋게 세뇌당하기 딱이다.
3달 가까이 겨울은 차게 내려 폭신하게 쌓이는 눈이었다가 잿빛 도는 물구덩이였다가 매서운 바람결이었다가를 부지런히 반복하며 오래 갔다. 지겨울만큼 오래였다....
먼저 춥고 바람이 쌩쌩 부는 바로 그 겨울이다, 싶으면서 무언가 기다려야 하며 조금은 들떠야 하고 뜨끈한 것을 향해 가야 하고... 등등 가벼운 마음의 채비들이 필요했었다.
오래된 그 계절들을 줄 세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충은, 좋았던 날들이었다.
내가 내 우울을 인식한 계절이 겨울이 아니었기에, 치료를 시작하고서 처음 맞는 겨울은 더욱 긴장을 불러왔었다.
대충대충, 어린 시절이 한참 지나고서도 겨울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었건만 어쩐지 해가 적고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드는 날들이 불쑥불쑥 끼어드는 그런 때가 바로 겨울이니까.
나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조용히 흐르지 않고 내가 버텨야만 하는 뭔가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뭐, 그 첫 겨울을 기억하자면 불안의 전조가 딱히 반전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내가 듣는 음악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고 집안에 뭘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당연지사
더 가라앉고 까라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이유를 그저 어둡고 하늘 내려앉은 날씨 탓으로 돌리는, 합리화하기에 딱 좋은 때임에도 그런건 때려치우고 왜이렇게 연말까지 기분이답답할까...아 왜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없을까, 왜 내 맴속은 계속 내가 탐구를 하고 파헤쳐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나 평온할 수는 없나 어떻게 된 게 달라지려고 하질 않나, 지쳤고 울거나 멈춰있었다. 그런 몇 년 간의 쓸쓸한 겨울을 나는 오랜 후에 털실뭉치처럼 뭉개서 기억해내겠지?
연말.
의미를 찾고 차곡차곡 일 년을 정리하고 다시 목표를 꺼내고 모이고 함께 웃고, 같은 일들을 나는 지금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것들을 다뤄보기로 지금 다짐한다.
내게 연말은, 그저 연말의 우울이지만 뭐든간 각각 나름나름인 것을 나는 이제 조금 알기에
사실은 많이 웃고 느긋하게 하루하루 나쁘지 않게 보내고 있다. 사실상 그게 연극일 수도 있겠으나 나를 위한 일인극이라면 나쁠 것도 없고 따질 것도 없다.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보니 조금 부족한 것도 같다. 사소하게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면서 조금씩 나는 나아지고 있다. 하는 일이 좀 늘어 피로가 좀 쌓이고 일상이 늘어졌다가 급히 마감때문에 우다다다 난리를 치다가 하면서 또 생활공간을 어지럽히기는 하나 맘의 파도는 보통 수준이다. 이럴 수가, 나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끌어모아서 괜찮아지려고 하는 내 안간힘 자체가 여전히 우울하기는 해도 작년 겨울에 비한다면 ... 위로가 된다.
어떤 연말이든, 맞이해 보내야 하니까 그렇지? 긍정적인 대답 기다릴게. 의식과 무의식의 나 둘 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