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다가 말다가 하면 꼭 이렇다
일기를 안 쓴 지도 몇 주는 족히 된 것 같고 무난하게 그 몇 주를 잘 보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오히려 글을 쓰게 해 주었으니 이걸 고맙다고 해야할까 다행이다 뭐 그런 말로 넘겨야 할까...
이렇게 쓰려고 마음 먹은 것은 글쎄, 내 입장에서는
이것이 내 상태가 과히 나쁘다...이러저러하게 치이고 받쳐
일기라도 써 내려가야만 조금 나을 정도의 좀 괜찮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느껴진다.
이 주제를 가지고 브런치에 연재를 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내게는 과하게 가열찬 시도였다 애초에.
내가 차분히 미리 제목도 정하고 요일도 정하고 하나씩 정리하다보면 나름 괜찮은 일기와 일과이겠다 싶었는데
결국 그 약속마저 우습게 가볍게 날려버린 꼴이 되어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부아가 치밀 만큼은 아니나, 지금 첫 말을 쓸 때 보다는 좀 약간 기분이 상하면서 슬슬 치밀어 오르려고 한다.
결국 우울이 늘 고민했던 것처럼 내 가죽인양 그냥 쩍쩍 내게 달라붙을까봐 두렵지만, 그러나 그 두려움이, 익숙한 우울 속에서 허송세월하리라는 그러니까 나는 그저 우울한 편인 사람으로 애초에 정해진 것만 같은 아득한 예감으로 스윽 둔갑할 때. 섬뜩하면서도 사실은 이미 너무나 익숙해서 마음엔 진동조차 없다 답이 없다... 했었건만
지금 치미는 이 감정은 또 무엇일까.
알 것도 같고 사실은 묵어있던 감정의 반복일 거라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 진다. 싫다... 우울증을 앓는 지금의 내가.
사실은 두 알의 약봉지를 모른 척 하고 떼 먹은 날들이 ... 가만있자... 아마 병원에서 확인해봐야 확실하겠지만 한 달은 족히 넘는 것 같다. 또 나를 속이고 실험했다. 이 과정은 자꾸 반복된다.
대충 마음이 밝고... 좀 밝아지고 대수롭지 않아진다. 약에게 고맙다. 며칠은, 더해서 좀 여러 날을, 때로 일주일 연이어 먹고서 계산을 하다보면 어쩐 일로 약을 잘 챙겨먹은 내가 기특해 내심 웃음도 터진다. 어이, 잘했어 어이구 세상에
그런데 그러고 나서 다시
약을...꼭 먹어야 하나? 아니 ...(꼭 생각 속에서도 ‘아니....’ 이러고 앉았다.) 나 요즘 아주 활력도 돌고 딱히 뭐 이렇게 가벼운 울적함도 없는 것 같고 바쁘고. 이쯤이면 내가 단약해도 될 것 같은데...한다. 이 패턴으로 몇 년이다. 선생님께서도 늘 간절한 표정으로 진료 마무리 쯤에는
자, 이번에는 조금 꾸준히... 복용을 하시고 오셔서 우리가 다시 또 다음을 생각해 봐요.
하실텐데. 나도 내가 질려서 그 말을 듣기가 싫어진다.
어떤 애매모호한 근거들, ‘두통이 없다’, ‘살짝 기분이 좋다’, ‘바빠서 뭐 감정을 들여다 볼 겨를이 없다’ 같은 항목을 머릿속으로 체크해가면서 나는 이제는 약을 그만 먹고 이 생활을 청산해야겠다고 자가진단을 내린다. 이것이 몇 수의 반복인지 정말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계속이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아. 다시 되돌아갔구나.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구나.
잠이 쏟아지고 그냥... 산다는 것이,
앞뒤없이) 산다는 게 정말 별 게 없고 그냥... 더 기대할 게 없다.
하다가 애써 정신 부여잡고 보면 내가 만든 내 우울인 것이다. 우울증을 내세우기도 감추기도 싫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사실 그냥 그 말과 나를 떨어뜨리고 싶은 게 진심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약의 효능은 분명 놀라운 것이 정말 한동안 나를 속일 수 있을 만큼 나를 웃게 하고 진정시키며 날씨가 어두워도 내 어깨를 누르는 무언가를 만나지 않게 한다.
그것이 효과나 효능이 발동하면서 나를 호전시키는 무언가가 아니라 내 능력이라고 오해하면서
오늘 같은 일은 발생한다. 이 매커니즘의 시발점인, 물 속으로 가라앉아 이따금 물방울을 뱉으며 더 아래로 가라앉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나를 만나는 일.
그렇다고 해도 오늘의 약을 꺼내 먹는 일은 너무나 두려운 일.
하지만 내일은 꼭 진료를 가고 선생님을 뵙겠다.
믿을 것이 없어 나 자신을 믿은 나를 어떻게라도 위로받아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자꾸 내가 그럼 그렇지, 니가 뻔하지 하는 말이 귓전에 울리니 나는 바꿔서 듣겠다. 우울이 그럼 그렇지
...늘 뻔했지. 내 잘못은 조금 뿐이다. 울 일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