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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Dec 12. 2024

우울증을 가진 나를 데리고 산다

그건 정말이지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

그렇다. 그래도 쓰고, 나를 살피고, 가만 느끼고 또 진정도 해보고

귀찮아도 일어나 본다.


이번 진료에서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약을 일주, 이주 넘어가도록 안 먹고도 그걸 못 본 체 하고 싶고 그냥 약이 먹고싶지가 않아요.”


말 그대로였다. 선생님은 정말 난감한 낯빛으로

제가 그럼 뭘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하셨다.


그러게 말이야 이건 로봇처럼 입을 열어주고 약봉지를 뜯어내 넣어달라는 거여 뭐여 나도 참

그렇지만 그게 그 때 나의 가장 절실했던 뭐.. 그런 고백이었다.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으니까.


약 뿐이 아니다. 늘 꾸준한 거라곤 없이 겨우 버티며 살고 있다. 일정한 습관 같은 건 진절머리가 났다.

분명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렇게 기를 쓰고 진절머리가 난다.


선생님의 얼굴은 난처했고 약간 내 감정을 받으며 좀 짜증도 나신 것 같았다.

별 수 없었다...


각설하고, 오늘 쓰려는 건 그 날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


약을 놓치지 않고 먹고 있다. 그게 지난 주 무슨 요일이었는지 혹은 지지난주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분명 이번엔 먹는 것에 기를 쓰고 놓치지 않고 있다. 다른 것 없이 처방된 기간 동안 성실히 먹어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기로 했으니까 이건 사람 대 사람의 약속이므로 그걸 지키겠다는 마음에 기대, 열심히 먹고 있다. 잘한다.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 이따금씩 마주치는 낯익은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한참 감탄하곤 한다. 비교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저들과는 다를까.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벅찰까, 뭐 그리 힘을 쓸까, 뭐가 그리 바쁘며 기대에 차고 하루가 꽉꽉 알차게 들어찰까?


이제는 오래된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겼으므로 내 인간관계는 적디 적고 좁디 좁다.

그런데 그 좁은 틈 안에서 또 물끄러미 타인을 관망한다는 게 참 괴롭고 소모적이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내가 내 머리채를 또는 어깻죽지를 잡고 질질 끌며

저것 봐라, 저 사람들 좀 봐

산다는 게 너는 지금 맞는지. 삶이란 너 말고 다른 이들에게만 있는 거 아닐까?


쓰고 보니 정말 비참하고 참담하고, 미안하다.

병에 든 나를 데리고 편안한 것 따뜻한 것을 제안하고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들을 뇌까리며 몇날 며칠을 열흘을 몇주를 몇개월을 몇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악력으로 나를 잡아끄는 나 역시 고롭고 외롭다.

내가 나를 생각하고 되새기는 게 그나마의 루틴인데, 잠시 잠깐만이라도 아주 연극적이라도 생각하면 맘이 좀 완화되는, 부캐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챗지피티에게 물어볼까 이런 나의 삶을 어떻게 해야할 지? 초라한 결론을 또 내 본다.


... 초라하지도 않다.

취소. 챗지피티가 진짜 도움 줄 수도 있어. 한낱 우울증 환자 주제에 환상의 기술력으로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오픈에이아이를 그렇게 표현하다니. 미쳤군

지난 번에도 아주 짧고 멍청한 질문을 던지고선 그(그녀)의 답변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렀잖아.


멍청하게 짝 없는 양말을 바라보고 앉았지 말고 모아서 세탁한 후 건조기에 넣은 다음 아침에 찾아 신기.

이걸 내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끌려다니는 나와 데리고 다니는 나 둘이 언제쯤 합의를 봐 외출 때마다 짜증을 내지 않을지. 지켜보겠다.


가만히 눌러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며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그런 식의 요양보단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잠시 몰입할 방을 찾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내 잠정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할 일을 싸들고 나가고, 굳이 걷고 일을 만들지만 고작 양말 루틴 때문에 어그 슬리퍼 살 것 같다.

소비를 부추긴다 우울한 감정은.


아주 일상적인 것, 아주아주 정말정말 일상적이고 일상적이고 그저 안 할 이유가 없는 정말 자명한 어떤 사소한 일일수록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건 쌓이고 흐트러지고 분주한 아침을 망친다.

어쨌든 이 갑갑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어떤 행동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다른 방법‘을 찾는다.

결론은 늘 비슷하다. 쿠팡으로 양말을 더 주문하든지 해야겠다...

어그 부츠는 도저히 곰발같아서 못 신겠고 양말 안 신어도 되는 털신을 사든가 해야겠다.

이러든가 저러든가, 그냥 돈 주고 사서 이 꼬라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벗어나자. 하는 거다.

슬프려고 쓰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인데, 또 이렇게 글로 쓰고 다시 보니 그저 슬프다.


분명 내게도 소중한 일상인데

가꾸지 못한 밭처럼 마르고 부서진 가루들이 널린 것 같은 내 시간들.


시간들이 흐른다. 12월에도 여전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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