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 나는 너를 몰랐어
※ 브런치 무비패스로 미리 본 영화입니다.
※ 본문에는 약한 스포일러가 있고, 결론과 맨 끝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소름이란
이 정도로 기분 좋은 소름을 안겨준 스릴러물은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는 <겟 아웃>보다도 좋았다. 처음 볼 때만 하더라도 “히치콕에 견줄만하다”는 평에 ‘뭔 개소리야’ 이러고 있었는데, 너무나 기분 좋게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과연, 히치콕에 견줄만하다.
그동안 인터넷을 소재로 한 영화, 스릴러물은 많았다. 그러나 오로지 컴퓨터 화면만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이를 토대로 완벽한 흡인력을 끌어낸 영화는 <서치>가 최초다. 영화계에서는 21세기에 맞는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서치>는 이에 대한 성공적인 실험작이다. 어느덧 태풍과 함께 여름이 저물어가는 지금, 스릴러물이 그립다면 <서치>는 당연히 지금 봐야 하는 영화다.
‘한국계 미국인’ 스릴러물 주인공
사실 <서치>는 줄거리로만 놓고 보면 뻔하다. 부부와 딸이 함께 화목하게 살던 집에서, 어느 날 어머니이자 아내인 파멜라 킴이 인두암으로 사망한다. 그 후 2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딸 마고 킴과 아버지 데이빗 킴이 같이 산다. 두 사람의 사이는 괜찮아 보이지만, 파멜라 킴의 사망 이후로 두 부녀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마고가 아무런 연락 없이 사라진다. 데이빗은 마고를 찾으러 나서고, 온갖 고초를 겪는다. 여기까지는 익숙하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시아계 미국인, 그것도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고, 영화 속에서는 이들의 배경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데이빗의 문자를 보아도 데이빗의 어머니가 한글로 ‘엄마’로 저장되어 있는 점이나, 영화에 있어서 데이빗의 가족에 있어서 김치 혹은 김치 스튜가 꽤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영화, 그것도 스릴러물이 이런 설정을 가졌다 점은 중요하다. 대부분 미국 영화에서 데이빗과 같은 인물들은 백인 중년 남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아시아계, 그것도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오히려 형사가 백인 중년 여성으로 등장하는 미국 영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 반대라면 몰라도.
<서치>의 이러한 설정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등장과 맞물린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꽤나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모든 출연진이 아시안인 미국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오션스8>에서 맹활약한 한국계 미국인 여성 래퍼 아콰피나가 출연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실제로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열광한 영화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좋던 싫던 미국 혹은 영미권에서 아시안 파워가 커지고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현상 중 하나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인터넷 속의 삼라만상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딸 마고가 사라진 이후 데이비드는 마고의 컴퓨터를 샅샅이 뒤진다. 데이빗이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은 마고와 엄마, 파멜라 킴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마가 죽은 지 2년이 다 되어갔지만, 마고는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똑같이 힘들 아버지 데이빗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에도 데이빗은 마고가 숨기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캐낸다. 마고의 온라인 비밀번호는 여전히 엄마와 연관되어 있고, 데이빗에게 말했던 것과 다르게 마고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다. 그 과정에서 데이빗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는 다양하다. 기본적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부터 시작해서 데이빗이 정보를 저장하는 데 사용하는 엑셀, YouCast, 컴퓨터에 연결되는 소형 카메라 등등…. 오로지 컴퓨터와 인터넷만이 데이빗의 도구가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데이빗은 자신이 딸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점을 깨닫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렇게 데이빗이 딸을 알게도 해주지만, 데이빗이 상처를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데이빗이 마고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하면서 인터넷에서 #FindMargot 해시태그가 유행한다. 이 해시태그는 데이빗이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이지만, 데이빗은 이를 통해 마고에 대한 온갖 추측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목도한다. 마고의 실종에 대해 시큰둥했던 학생이 인기를 얻기 위해 우는 것을 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마고의 살인자로 단정 짓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치>는 인터넷의 온갖 장치를 통해서 양날의 칼을 보여주는 영화다.
더불어, 컴퓨터 화면만으로도 이런 긴장감을 연출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컴퓨터 화면만으로 관객을 이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라니. 이건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다. 개봉하면 직접 보시라.
끝까지 있었다
스릴러물이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좀 맘 아프지만,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영화 리스트에 추가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다. 결말만 말하자면…
결말에서 마고는 자신의 컴퓨터 배경화면을 바꾼다.
엄마와 자신의 사진이 아닌, 재회한 아빠와 자신의 사진으로.
PS. 아무튼 직접 대시할 용기조차 없는 남자 새끼들이 문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