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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Dec 13. 2018

어른 아이가 진실을 밝힐 때

<붉은달 푸른해>: 시가 있는 죽음에는 언제나 아이가 있다.


스릴러 퀸의 귀환


스릴러 팬으로서 기대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도현정 작가와 김선아의 조합이라니, 이 조합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전설의 드라마 <케세라세라>(2007)와 스릴러 팬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2015)의 작가, 도현정 작가의 새 작품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드라마 공백기를 깨고 <품위있는 그녀>(2017)로 성공한 김선아의 첫 스릴러 드라마 도전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붉은달 푸른해>의 포스터였다. 



“시가 있는 죽음에는... 항상 아이가 있다.”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서 폐쇄적인 지방 사회와 성범죄 실태를 고발했던 도현정 작가가 이번에는 어떤 문제의식을 들고 올지 궁금했다. 그리고 역시나, <붉은달 푸른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포스터에서 이미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은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보다 더 잘 드러난다. 이 드라마는 학대받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드라마다. 그런 점에서 tvN <마더>(2018)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붉은달 푸른해>는 문제의식을 고수하면서도 스릴러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붉은달 푸른해>는 안정적인 직장, 다정한 남편, 그리고 착한 딸까지 있는 차우경(김선아)의 완벽한 일상이 교통사고로 망가지면서 시작된다. 차우경은 교통사고 이후 단발머리에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보고, 남편과는 이혼하고, 각종 사고들에 얽히게 된다. 그러나 차우경이 누리던 일상이 원래 완벽했을까? 아직 사건의 전말이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금만 드라마를 들여다보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생 세경이 식물인간이 된 후 우경은 우울증을 앓았고, 새어머니가 어릴 적의 우경을 학대한 점 역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학대당한 기억은 무의식 중에 우경이 아동 상담사가 되고 아이들을 위해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얽매인 죽음은 오히려 우경의 삶을 깨운다. 비록 그 과정이 우경을 부수고 끔찍한 진실을 드러낼 지라도. 




우경 이외에 <붉은달 푸른해>의 등장인물들도 아이들과 연관이 있다. 거의 평생을 꿈나라 보육원과 한울 센터에서 보낸 이은호는 물론이고, 전 애인 연주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멈칫했던 형사 강지헌과 비밀을 숨긴 신입 경찰 전수영까지 비밀이 없는 인물은 없다. 그리고 아동학대범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배후 역시 아동 학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경이 “선한 의도, 악한 행위”라 말하듯이. 


“미친 여자, 아니에요.”



<붉은달 푸른해>가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차우경 캐릭터는 <원티드>(2016)의 정혜인과 비슷하다.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삶을 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혜인은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악플에 시달리면서도 리얼리티쇼 진행을 강행하고, 차우경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아도 초록 원피스의 아이를 쫓고 아이들을 구한다. 그 과정에서 정혜인과 차우경은 모두 ‘미친 여자’가 된다. 정혜인은 냉철하게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다는 이유로 “애 잃어버린 엄마” 같지 않다고 비난받는다. 차우경은 초록 원피스의 여자 아이를 쫓으면서 새어머니와 남편 모두에게 “정신 차리라”는 호통을 듣는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완벽한, 아니 겉으로만 완벽한 인생을 만들었을까? 과연 누가 미친 것일까?



전수영 캐릭터 역시 흥미롭다. 배우 남규리는 <붉은달 푸른해>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운명처럼 찾아와 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전수영 캐릭터를 생각하면 당연한 발언이다. 전수영은 한국 스릴러물에 흔히 등장하는 열혈 성장형 여형사 캐릭터가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손 the guest>의 강길영처럼 다혈질 베테랑 여형사도 등장하지만, 전수영은 그와도 결이 다르다. 오히려 겉만 보면 차갑다 못해 무감각하다. 그러나 남성 범죄자 등을 대면할 때 드러나는 분노와 폭력성, 즉 전수영의 이중성은 <붉은달 푸른해>의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규리의 연기 역시 생각보다 훨씬 잘 맞아떨어진다. 씨야의 비주얼이었던 남규리가 무표정하고 화장기 없고,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단발의 경찰을 이토록 훌륭하게 소화할 줄 누가 알았을까. 


도현정 작가는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서도 윤지숙, 김혜진 등 살아있는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붉은달 푸른해> 역시 차우경과 전수영의 활약을 기대한다. 


썩어 허물어진 죄의 무게


<붉은달 푸른해>의 전개 양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차우경의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 한울센터의 창고에서 죽은 아이 엄마, 그리고 차 안에서 불타 죽은 가정폭력범 아버지까지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러나 사건들을 쫓아가고 진실에 다가가는 두뇌싸움이야말로 스릴러의 묘미 아니던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붉은 울음’과 차우경의 비밀이 얽혀 있다. ‘썩어 허물어진 죄의 무게’가 밝혀지는 순간, 아이들을 버리는 시스템과 차우경의 성장이 드러나지 않을까. 


도현정 작가 특유의 어둡고 스산한 느낌 때문에 <붉은달 푸른해>가 대중적으로 성공할 스릴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붉은달 푸른해>는 올해 MBC 드라마의 지속적인 스릴러 기획에 있어 성공적인 단계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믿는다. OCN과 tvN의 전유물이라 느껴졌던 마니아 층의 어두운 스릴러를 시도하고 안정적으로 전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단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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