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MBC 드라마 글쓰기를 마치며
드라마 덕후, 성덕이 되다
M씽크에 지원할 때 지원 분야와 참여 형식을 선택하는 란이 있었다. 참여 형식은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글쓰기였지만(나도 포토샵과 프리미어 잘하고 싶다), 지원 분야는 고민하지 않고 드라마를 선택했다. 수많은 방송콘텐츠 중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변함없이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 작가와 PD, 음악감독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웠고,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고3 때도 인터넷에서 드라마 줄거리를 찾아보는 게 취미였다.
바야흐로, 나는 자타공인 드라마 덕후였다.
M씽크 활동 이전에도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로 활동하고, 가끔 영화 마케팅사에서 시사회 초대 메일을 받을 정도로 영화 글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M씽크의 드라마 부문 작가는 다른 의미로 값졌다. 그동안 영화 글을 더 많이 썼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건 드라마였다. 아주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은 이상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결’로 끝나기 일쑤인 영화보다는 긴 호흡의 드라마가 좋았다.
그래서 M씽크 작가는 ‘성덕’의 길이었다.
그러나 M씽크 면접을 볼 때도, 그리고 발대식에 와서도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원자 중 절반 이상은 예능 분야에 지원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MBC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 <전시적 참견 시점>, <라디오 스타>, 그리고 <복면가왕>이다. 한편으로는 조금 서글퍼졌다. 한때는 한국 방송 중 최초로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시도하고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MBC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MBC 드라마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트렌디한 드라마는 점점 지상파보다는 공중파에서 방영되었고, 한동안 MBC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는 분야는 최장점인 사극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면접을 볼 때, 국장님이 “드디어 드라마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워요.”라 말했을까.
그래도, MBC 드라마를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다시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MBC가 드라마에서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약 8개월 간 다시 성장하는 MBC 드라마를 그 어떠한 시청자보다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MBC, 스릴러를 만나다
2018년 MBC 드라마에서 가장 큰 변화는, 사극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극은 <대장금>(2003)부터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까지 MBC의 자랑이었다. 심지어 MBC 드라마의 침체기였던 최근까지 <역적>은 시청률에서나 시청자의 호응에서나 성공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2018년 MBC 드라마에서 사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MBC 드라마의 새로운 선택은 바로 스릴러였다.
이러한 선택에는 손형석 CP의 영향이 큰듯하다. 손형석 CP가 기획한 <파수꾼>(2017), <검법남녀>(2018), <붉은달 푸른해>(2018)의 공통점을 다 짚어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도심을 이용한 미장센과 자동차 액션씬, 그리고 가감 없는 해부 씬까지. 이러한 시그니처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름이 아니라 <검법남녀>가 방영되고 있던 5월, 손형석 CP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에 남는 말이 있었다.
“tvN, OCN도 처음부터 스릴러 강자는 아니었어요. 계속 뚝심 있게 스릴러물을 기획하고 시도하면서 스릴러 강자가 된 것이죠. 저는 그래서 MBC 드라마의 스릴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올해 MBC 스릴러의 성장은 눈에 곧바로 보였다. 5월에 시작된 <검법남녀>는 캐릭터 활동도에서는 아쉬웠어도 최고 시청률 9.6%을 돌파했고, 첩보물과 코미디물의 조합과 소지섭-정인선의 성공적인 연기로 <내 뒤에 테리우스>는 수목드라마 중 화제성과 시청률 모두를 잡았다. 현재 MBC 주중 드라마 역시 모두 스릴러물이다. 수목드라마 <붉은달 푸른해>는 김선아의 원톱 연기와 도현정 작가 특유의 어둡고 사회고발적인 분위기로 스릴러 마니아들을 모았다. 반면 월화드라마 <나쁜 형사>는 신하균의 드라마 복귀작이자 BBC의 <루터> 리메이크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주지훈, 진세연, 김강우 등이 출연하는 2019년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 <아이템>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감히, 2018년 MBC의 스릴러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쉬운 로맨스, 다시 보고픈 사극
물론 아쉬운 점 역시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는 점차 변하고 있다. 그러나 MBC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로맨스가 있냐 하면... 글쎄. 재미있게 보았던 <이리와 안아줘>는 순수하고 가슴 따뜻한 로맨스였지만, 채도진과 윤희재 부자의 살벌한 대결 역시 중요한 서사였다. 주인공인 채도진과 한재이가 중학생 때 처음 만나 20대 후반까지 서로에 대한 감정이 한결같다는 설정 역시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부한 건 둘째치고 현실적이진 않잖아. <이리와 안아줘>를 제외하면 로맨스에서는 더더욱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었다. <사생결단 로맨스>는 주연배우들은 마음에 들었어도 한드 로맨스 서사의 진부함과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년의 MBC에서는, 새로운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싶다. KBS 단막극 <개인주의자 지영씨>나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와 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로맨스는 어떨까? 올해는 보지 못했던 사극 역시 보고 싶다. 기왕이면 요즘 유행하는 퓨전 사극 말고, <역적>이나 <정도전> 같은 정통 사극은 두뇌 싸움하는 재미가 있다.
2019년 MBC 드라마는 조금 더 과감해져도 된다.
더 과감한 시도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이미 2018년에 충분히 보여줬다.
다음에 또 만나요
각 달의 테마 글도 써야 했지만, 8개월 동안 MBC 드라마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 그래서 M씽크의 마지막 글은 꼭 그동안 보아온 MBC 드라마들을 회상하는 글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덕분에 시험기간에 사서 고생 중이다). 이렇게 모아보니, 참 다양한 드라마를 보았구나 싶다. 비록 내년부터는 평범한 MBC 시청자로 돌아가겠지만, 앞으로도 MBC 드라마의 성장을 지켜볼 것이다.
<히트>와 <개와 늑대의 시간>, 그리고 <선덕여왕>처럼 내 인생 드라마가 되는 MBC 드라마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