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보내며
나름, 행복했어
<누군가의 오늘> 매거진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느낌이다. 작년 글은 무진장 우울했는데, 올해는 다행히 그러지는 않을 듯하다. 당장 내 옆에 앉아서 작업하는 언니가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행복해진 것 같아서.
작년 내내 날 괴롭힌 가족 문제,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의 갈등은 올해는 무사히 넘어갔다. 항상 작게 싸우는 것조차 귀찮아하던 내가, 한번 크게 맘먹고 가출 선언했던 게 엄마한테는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나의 10년 지기 친구에게 이 영광을!) 2월 이후로 가정은 평안-해졌다. 내가 변한 것보다는 엄마가 깨달은 게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엄마는 올해 나의 급격한 진로 변경에도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니 인생이지.
아빠가 할만한 대사를 엄마가 하니 어색했다.
2016-2017년에 너무 방황해서 그런지 2018년은 차분히 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도 명확한 확신은 없지만, 이 어중간한 나이에는 다들 그러고 사는 것 같다. 절친한 친구가 행시에 붙고, 회사원이 되어 주택대출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그래도 조급 하지는 않아. 올해 대학원을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대학원 원서를 내지 않았고,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반도의 흔한 취준생이 되겠지만 괜찮을 거야.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까지 브런치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브런치 무비 패스와 MBC 청년시청자위원회 활동이 아니었다면, 올해를 버틸 힘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 브런치에 못 쓴 글들이 많아서 그거 하난 아쉽다. 연애 카테고리도 생각보다 많이 못 썼고 음악이나 다른 글감도 많은데, 내년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감사한 기억들
복학 이후에도 감사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작년 2학기에는 우울한 기억밖에 없었는데, 감사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이번 학기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서양사 특강 교수님의 중간 레포트 코멘트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사실 내가 레포트를 받기 전에 앞에서 ‘팩트 체크’ 받는 모습에 살짝 떨고 있었는데,
“논리는 빈틈이 없어서 코멘트만 할게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짜릿하고 뿌듯했는지 몰라.
금융사 과목을 이렇게 재미있게 들을 줄 몰랐다.
음모론에 대한 인종적/종교적 해석에 공감한다는 코멘트가 너무 좋았다.
수업이 엄청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MBC 활동으로 인한 결석계도 받아 주셨던 교수님의 기말 레포트 코멘트. 수요일 저녁 5시에 시험 끝나고 나서 목요일 자정까지 거의 하루 반 만에 쓴 레포트였는데, 전체 수업에서 점수가 2등이어서 뿌듯했다. 중간을 잘 못 봐서 학점은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이번 학기는 의외로 사학과 과목들이 힘이 되어줬다. 사학과 대학원은 마음에서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역사라는 학문은 내게 여전히 첫사랑과 같다.
M씽크 에디터님들께 받았던 서포트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낱 대학생인 나에게 “배울 점이 너무 많다”라고 말씀해주신 에디터님 항상 감사했습니다.
졸업사진을 찍는 날, 글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며 사진 예쁘게 찍으시라던 말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
하늘의 뜻을 반이라도 알까
내년이면 반 오십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20대 중반.
아직 어린 나이지만, ‘반 오십’이라는 말은 아직도 어색하다.
공자는 50세를 ‘지천명’, 하늘의 뜻을 깨달을 나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도 한 반쯤은 알아야 할 텐데, 여전히 그렇지는 못하네.
하늘의 뜻은커녕, 내 뜻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내년의 목표는 취업도 있지만, 내 뜻을 알고 싶다.
하늘의 뜻까지는 몰라도 내 뜻은 이제 좀 알고 싶다.
지금은 반, 아니 삼분의 일 정도 알고 있으니 내년은 뭔가 더 할 수 있겠지.
힘들어도 행복은 잊지 말고,
2019년은 내게 어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