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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Feb 05. 2019

라멘, 바쿠테, 그리고 라멘테

<우리가족: 라멘샵>: 그럼에도, 사랑

※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단순한 가족요리힐링 영화는 곤란해



브런치 무비패스 메일이 왔을 때 신청할지 말지 조금 고민을 했던 영화다. 예고편을 봐서는 도저히 영화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고,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 류의 영화 같다는 느낌이 없잖아 들었다. 그러나 워낙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데다가 작년 싱가포르 여행의 추억이 조금 남아있었기에. 


최근에 시사회에서 본 영화들이 다 어느 정도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들이었다. <언더독>, <알리타>를 이어 <우리가족: 라멘샵>까지 모두 그랬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국 영화 마케팅사들의 전략에 탄식했다. 이 영화를 포스트 <리틀 포레스트>, 먹방 영화라고 광고하면 어떡하냐고.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요리힐링 영화가 아니다. 나는 일본 상업영화 중 과거사를 이렇게 오롯이 들여다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진실을 마주하는가



영화의 주인공 마사토는 몇 대째 이어져 내려온 라멘집 아들이자, 일본인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영화의 시작은 무뚝뚝한 아버지 카즈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일찍이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를 본 마사토는 싱가포르 행을 결심한다. 



싱가포르에 온 마사토는 블로그로 만난 미키와 함께 어머니의 흔적을 찾는다. 어머니의 일기와 미키의 도움으로 마사토는 바쿠테(싱가포르의 전통 수프) 가게를 운영하는 외삼촌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외삼촌에게서 듣는 어머니 메이의 사연은 항상 아름답지는 않다. 메이는 카즈오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이내 가족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는 단순히 카즈오가 나이가 많아서, 외국인이라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메이의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남편을 일본군에게 잃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단순히 메이의 어머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 사회 전체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마사토의 외삼촌은 친척들이 수군거리던 당시를 씁쓸하게 떠올린다.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은 마사토는 싱가포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이를 어머니 앞에서 죽인 일본군에 대한 목격담을 담담히 듣는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역사에 마사토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외할머니를 머리로는 이해했을까? 

가족이 개인에게 상처를 줄 때



메이는 그럼에도 카즈오와 결혼한다. 가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가족의 의사는 여전히 개인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나 결혼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친척들은 메이의 선택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이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온 메이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이는 결국 싱가포르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사토는 어머니의 고통이 담긴 일기를 보며 분노한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역사를 분명히 이해하고 눈물을 흘린 마사토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을 그리고 괴로워했던 메이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자신이 메이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외할머니는 자신을 다시 외면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도 곤란하지만, 괴로워하는 개인은 가족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족: 라멘샵>은 일본의 과거사를 비치지만, 가족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개인을 조명하는 데도 충실하다. 

용서의 한 그릇


할머니에게 분노했던 마사토는, 그럼에도 해결책을 찾는다. 그는 일본의 라멘과 싱가포르의 바쿠테를 결합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외삼촌의 도움과 함께 만들어낸 ‘라멘테’는 마사토가 양국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외할머니에게 화를 냈을 때와 달리 마사토는 그의 집 앞에 라멘테를 두고 간다. 이를 받아 든 외할머니는 마음을 마사토에게 맘을 연다. 



마사토와 같이 향신료를 고르고 바쿠테 비법을 전수하던 외할머니는, 라멘을 먹을 때 메이를 본다. 그리고 마사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함께 운다. 그렇기에 마사토의 라멘테는 용서와 화해의 음식이다. 용서와 화해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족: 라멘샵>은 누락되는 요소 없이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로 건너가 라멘샵을 연 마사토는 자신의 라멘테를 나눠먹는 부모, 카즈오와 메이를 본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외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영화답게, 따스한 이해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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