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 시사회로 미리 만난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시 디아스포라를 마주하다
다음/네이버 영화의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댓글 창을 보고는 다소 암울했다. 제목과 소재만 보고 빨갱이 영화가 나왔다면서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김소영 감독님이 직접 무대인사를 온 시사회에서 이런 오해가 억울하다고 직접 말할 정도면, 배포사 측에서도 꽤나 스트레스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반응과 별개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북한과 디아스포라에 대한 영화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것은 반갑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제작 기간을 고려하면 꽤 절묘하긴 하지만, 남북 관계의 해빙과 난민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대두된 현재에 이런 영화들이 나와서 더 반갑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제작한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을 시사회로 보게 되어서 좋았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북한에서 유학을 떠난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 8명의 유학생 “8진”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한다.
사랑은 무엇일까
“모스크바 8진”의 이야기 자체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가난한 북한의 이미지를 주로 보아온 현재 세대로서는 기술도 아닌 영화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소련으로 떠난 유학생의 이미지는 낯설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독재체제가 굳어진 현재의 북한과 다르게, 연안파가 존재했던 초기의 북한 역시 낯설다. 그러나 2014년 당시 생존자였던 최국인과 김종훈은 그 시절의 북한을 보여준다.
유학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유했던 것은 아니다.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여태껏 쓰고 있는 대한민국과 다르게,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고아들을 동독과 폴란드에 유학 보냈던 국가다. 최국인, 허웅배처럼 연안파 독립군 출신의 엘리트도 있었지만, 8진의 막내 김종훈은 6.25 전쟁 이후 혈육이 남아 있지 않은 혈혈단신이었다. 그러나 유쾌한 김종훈 감독은 그 상황이 자신을 소련으로 이끌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전쟁 이후 출신성분이 너무나 중요해진 북한 사회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을 테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서는 여러 가지 사랑이 드러난다. 먼 타지에서 러시아어로 씨름하며 같이 공부했을 8진을 비롯한 북한 유학생들의 사랑은, 소련 망명을 기점으로 단단해진다. 북한 대사관과 대학 기숙사에서 쫓겨난 후, 모스크바 근교 숲에서 맺어진 그들의 결의는 평생을 함께했다. 8진 중 절반이 고려인이 모인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것도 그들의 결의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 영화는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준다. 8진 중 극작가 한진(한대웅), 그리고 그의 러시아인 아내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진은 파견지로 가는 열차 티켓을 끊을 때 아내를 만났고, 2014년 인터뷰에 응했던 그의 아내는 혼인신고를 하던 날을 기억한다.
“누가 당신과 이 고려인과 결혼을 하도록 강요했느냐?”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까? 사랑은 인종, 국경 모두 뛰어넘습니다.”
한진과 가족, 그리고 북한에 남아 있었던 한진의 부모는 그 사랑을 서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진의 부모는 러시아인 며느리와 손주에게 우편과 한복을 보내주었고, 그들은 멀리서 느껴지는 사랑을 잊지 않았다.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 하느냐
8진의 구성원 중 4명은 카자흐스탄에 정착한다. 막내이자 특수 감독이었던 김종훈, 극작가 한진, 독립운동가 허위 장군의 손자이자 8진의 정신적 지주였던 허위,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주목받은 최국인이 모두 카자흐스탄에 정착한다. 이들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려인이 많은 국가였기 때문이다. 김종훈은 카자흐스탄에 도착하자마자 몇 년 만에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행복해했다고 전한다. 북한에서 엘리트였던 그들이지만, 카자흐스탄에 먼저 정착한 고려인들과 더불어 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최국인 감독은 한국인,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게서 배울 점이 오히려 많다고도 말한다. 그는 카자흐스탄의 개방성과 포용성으로 인해 고려인들이 무사히 정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최국인 감독은 박지원의 <양반전>을 재해석하는 영화를 제작한 후 상을 받기도 했다. 최국인은 연안파를 몰살한 김일성 일가는 미워하지만, 카자흐스탄 정부에게서 받은 훈장은 자랑한다. 디아스포라로서 카자흐스탄 사회에도 어느 정도의 정체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최국인 감독은 디아스포라의 설움도 동시에 이야기한다. 결국 자신은 카자흐스탄을 위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고려인이 가지는 한계이자 설움이라고 말한다. 고려인, 한민족만을 위한 영화는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은 고려인들에게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사회이자 지역이다. 그러나 고려인과 그들의 현재 터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그들이 머무르는 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구절이 디아스포라의 삶을 잘 표현한다 생각했다.
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
거기에도 이름이 있어야 할 거야
고향이란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어야 할 거야
잊혀지지 않을 망명자
개인적으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 재미있는 영화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상당 부분 김종훈과 최국인의 인터뷰에 의존하고 있으며, 진지한 분위기를 고려해도 진행에 있어 계속 흥미가 생기는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만큼 다양한 인터뷰와 흥미롭고 웃긴 방식을 기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구성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건조한 방식, 김종훈과 최국인의 귀한 인터뷰, 카자흐스탄의 넓은 자연, 그리고 고려인이자 러시아의 록스타였던 빅토르 최의 음악까지.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생소한 모스크바 8진을 망명 3부작의 마지막에 소개한 김소영 감독의 뚝심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로서 한민족에 수없이 많은 디아스포라, 혹은 망명자 중 하나의 기록이 남았으니까.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디 고려인 사회도 찾아갔으면 한다. 조금이라도 고려인 및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알려지면, 난민과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더 늘을까 싶어서.
PS. 극작가 한진 선생이 말년에 한국, 일본 여행기 책을 썼다는 사실이 얼핏 지나갔다.
볼 수 있으면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