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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보다 나약해

그러니 기대려고 하지 마

by 유녕

번 아웃.

리터럴리, 번 아웃.


바쁘게 사는 게 문제는 아니다.

그냥 지친 게 문제야.

지치게 하는 상황과 이 모든 걸 생각보다 잘 견디지 못하는 내 자신이 문제야.


6월을 마지막으로 교지를 그만둔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것도 3월이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둔 게 다행이야. 인턴과 교지를 병행한 4-6월은 내 인내심과 체력을 시험하는 기간이었다. 초반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일 밤 이를 갈았다. 인턴은 이제 8월 말이면 끝나고, 취준생이 된 이상 공채 서류는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 베프와 통화한 결과 다음 주 월요일 마감인 두 공채를 포기했다. 퇴근하고 같은 인턴들과 찜닭과 맥주를 마시고 난 다음 날, 자소서 2개는커녕 인턴 과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버렸다. 조금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면 나아질까? 그래 봤자 8-9월까지는 어림도 없다.


의지박약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이 길이 잘 맞는지도 잘 판단이 안 선다. 드라마와 스토리텔링은 아직도 너무 사랑하지만, 이걸 업으로 삼는 게 맞는 건지. 오늘도 웹툰과 넷플릭스를 재미가 아니라 셀링포인트로 찾아다니는 내가 가끔은 싫어.




왜 사람들은 내게 멋대로 기대할까.


태어난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아.


언니가 이루지 못한 것을 10년 늦깎이였던 내게 기대했던 엄마부터 그랬고, 내 학창 시절이 그랬고, 대학에 와서까지 그랬다. 내가 아무리 엄마 딸이라고 한들 자아실현을, 자신의 인생을 대신해줄 수는 없는데. 다른 인간 관계도 다를 바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기대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죽어도 자아 의탁형 인간은 내 인생에 다시 끌어오기 싫은데 왜 그런 사람들만 내게 오는지. 나는 누구든 소위 ‘모성애’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을 돌봐주고 고치는 데 익숙하지 않아. 내가 돌보고 가르칠 바에는 귀찮아서라도 거리를 두고 혼자 있는 게 나은 사람인데 왜 함부로 ‘의지’하길 바라지?


나는 당신이 원하는 조언과 안정과 사랑을 줄 수 없다.

내가 바라지 않는 동경, 내 나약함을 들키는 순간 떠나갈 동경은 필요하지 않아.


단 한 번이라도, 이기적이라도 좋으니 내가 기대어 쉴 수 있는 견고한 벽을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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